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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975322 / 192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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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열네 살 이하는 일하면 안 된다고요? 누가 그래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말도 안 돼요. 일 안 하면 먹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당장의 일과 빵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보호가 우?선인가, 생존이 우선인가? 1995년 부활절, 고사리손으로 카펫을 만들던 한 파키스탄 소년이 아동노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이유로 카펫마피아에게 살해당한다. 열두 살 난 아이의 이름은 이크발 마시흐. 저자는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건 향상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고통스런 생활환경들이, 시대와 장소를 바꾸어 동아시아에... “열네 살 이하는 일하면 안 된다고요? 누가 그래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말도 안 돼요. 일 안 하면 먹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당장의 일과 빵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에게 보호가 우선인가, 생존이 우선인가? 1995년 부활절, 고사리손으로 카펫을 만들던 한 파키스탄 소년이 아동노동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이유로 카펫마피아에게 살해당한다. 열두 살 난 아이의 이름은 이크발 마시흐. 저자는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건 향상과 함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고통스런 생활환경들이, 시대와 장소를 바꾸어 동아시아에서 의연히 존재하거나 확대되고 있음을 깨닫고 또 다른 이크발 마시흐를 찾아 길을 떠난다. 이후의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 이 책은 네팔의 어린이 노동자들을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그러나 발길을 재촉해 도착한 카펫공장에는 이미 단 한 명의 일하는 아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서유럽 소비자들은 “수제 카펫이 어린이의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하면서 아동노동을 통해 만든 카펫의 수입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 왔다. 이제 카펫공장에서는 더 이상 아이들을 고용하지 않는다. 넘쳐 나는 게 값싼 노동력인데, 약간 더 싸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아이들을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하루하루의 생계유지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무수한 사람들이 여전히 굶주리는 네팔―일하는 아이를 만들어 내는 근본 구조가 바뀌지 않은 현실 속에서, 카펫공장으로부터 내몰린 아이들은 단지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거리를 헤매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뉴버스터미널은 매일 새벽, 밤을 새워 버스를 타고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향 마을을 등지고 떠나온 처지였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도시로 온 아이들은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었고,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러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저자는 정작 일을 하는 당사자인 아이들의 말에 제대로 귀 기울인 이가 거의 없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을 아동노동에서 구해 주거나 보호하는 게 아니다. 그저 미래의 꿈을 이루는 기반이 될 돈을 벌 수 있도록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있었으면 할 따름이다. 하다못해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기만이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무엇이 아이를 길 떠나게 하는가? 아동노동과 이주노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고향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또다시 해외 도시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주’라는 이름의 뫼비우스의 띠 빈곤에 지쳐 도망치듯 고향을 떴지만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힘든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아이들은 고향 마을에서도 줄곧 일을 해야 했지만, 카트만두에서도 일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시가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시골 아이들은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런 노동이 기다리는 카트만두로 왜 가려 했던 것일까. 가난한 나라 네팔. 위로부터의 글로벌이란 자장 속에서 배양되고 탈근대라는 수식어를 단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힘없는 그곳의 어린이들이었다. 소작료가 50퍼센트가 넘는 봉건적 지주제 및 반노예적 플랜테이션 노동으로 점철된 네팔의 농촌 현실은 위로부터의 글로벌의 진행과 엇물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동을 촉진시켰다. 이른바 위로부터의 글로벌, 즉 길이 뚫리자 상품이 들어왔고 미디어(이미지)에 의한 소비가 강요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향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또다시 해외 도시로의 이주가 가속화된 것이다. 빈곤이 낳은 이주에의 욕망은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아이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떠밀었고 자의든 타의든 그들은 살기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은 아동노동을 뿌리 뽑느냐 하는 게 아니라 고향 마을을 이주하지 않아도 될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나가르코트 같은 농촌에서 염소젖 짜고 동생 돌보는 것도 아동노동이고, 카트만두 같은 도시로 흘러 들어와 도시의 값싼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아동노동이다.”라고 말하며 도시로 ‘이주’했는가 아닌가 하는 사실만이 다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이주’의 뫼비우스의 띠 끊기 사진과 동영상으로 직접 걷는 카트만두의 아동노동에 이르는 길 “나는 소녀의 손에 돌 깨는 망치 대신 하얀 꽃을 쥐여 주고 싶었다.” 이 책은 아동노동이 불가피한 네팔의 현실을 저자의 카메라와 동행해 이동 경로에 따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과 마주해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을 강구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140여 장의 사진과 이를 보완해 주는 동영상은 저자가 아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현실을 낱낱이 듣는 현장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동노동 현장과 그 현장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좀 더 가깝고 현실감 있게 느끼며 문제점뿐만 아니라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나아가 그렇다면 네팔 혹은 동아시아에서 어린아이들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 이주노동자가 되어 찾아올 한국에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을 폭넓게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동노동이 오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불과 몇십 년 전의 우리의 과거와 아동노동이라는 이름의 그들의 현재가 겹쳐지는 네팔 아동노동 현장에서 위로부터의 글로벌에 대항할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모색한다. 공정무역이나 공생무역으로 표현 가능할 이 연대 작업은 이미 우리가 네팔에서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고 네팔 사람들이 우리 속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이상, 특별히 심각한 어조를 띠지 않고도 누구에 의해서나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로써 고향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또다시 해외 도시로 이어지던 아동노동과 이주노동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아이들은 쓰레기 컨테이너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보물섬이라도 만난 것처럼. ‘쓰레기 더미’가 ‘보물섬’으로 변신하리라고는 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그곳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던 다른 아이들 역시 반다리와 머걸 일행을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컨테이너 위로 뛰어올라 가로등 불빛을 받으면서 그 위에 우뚝 선 아이들의 모습은, 힘들어하기는커녕 아주 씩씩해서 늠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버려진 비닐’과 ‘되살려지는 비닐’. ‘버려진 아이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으던 다아이들’의 몸부림이, 컨테이너 안에서 뒤엉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쓰레기와 아이들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지만, 그곳에서 어떤 희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63~64쪽)
하지만 아이들이 다듬어 낸 작은 돌들이 사용될 그 길은 ‘고향 가는 길’이 아니라 ‘고향에서 도시로 난 길’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른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카트만두의 물건들이, 삼성과 엘지와 소니의 광고 간판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입간판이 산골 마을까지 쳐들어갔을 때, 수닐 바하둘과 프리란치의 가슴도 함께 뛰었을 것이다. 열심히 소를 키워 봐야, 열심히 염소젖을 짜 봐야, 아무리 쌀짐을 날라 봐야 친구들처럼 진학할 수 있는 것도 아닐 바엔 영화라도 마음껏 볼 수 있는 카트만두로 가자,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111쪽)
그가 씨윈을 나오기로 결심한 것은 씨윈이 정말 아동노동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펫공장에서의 아동노동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카펫공장에서 사라진 아이들의 수만큼 거리의 아이들은 늘어났고, 그 아이들이 다시 템포 요금 보조원이나 채석장에서의 돌 깨는 작업 같은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로 밀려나는 현실을 그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제일 필요한 것이 무어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집을 짓되, 씨윈과 달리 ‘침대 없고, 가구 없고, 텔레비전 없고, 전임 직원 없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곧 ‘4무無’의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서방의 지원을 받아 씨윈의 집처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소수의 아이들을 그러한 집에서 살게 하려면 다수의 아이들을 지금의 일터보다 더 안 좋은 환경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될 소수의 아이들을 위한 씨윈이 아닌, 일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아이들을 위한 집을 그는 짓기로 한 것이다. (116쪽)
“열네 살 이하는 일하면 안 된다고요? 누가 그래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말도 안 돼요. 일 안 하면 먹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난 그런 거 안 믿어요.”
아동보호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거였다. 아동보호보다 노동할 권리 즉 ‘생존권’이 더 우선하는 것이 아니냐는 게 그의 주장 아닌 주장이었다. 아마 리크만스가 고민한 지점도 바로 이런 대목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동노동을 없앨 수 없다면 아이들이 ‘최소한의 보호’라도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게 ‘5루피’만 내면 잠을 잘 수 있고, ‘10루피’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더라도, 가능하면 4무의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아동노동에 관한 최저 기준’, 곧 ‘먹고, 자고, 치료받을 수 있는’ 아이들의 ‘생존’에 필요한(‘생활’이 아닌) 최저 기준을 몸으로, 실천으로 보여 준 셈이다. 산골에서 카트만두로 이주해 온 아이들의 권리를 말이 아닌 생활로 보여 준 것이다. (119~120쪽)
사실 아동노동이란 게 뭐 특별한 것일까 싶기도 했다. 나가르코트 같은 농촌에서 염소젖 짜고 동생 돌보는 것도 아동노동이고, 카트만두 같은 도시로 흘러 들어와 도시의 값싼 허드렛일을 하는 것도 아동노동이다. 다만 도시로 ‘이주’했는가 아닌가 하는 사실만이 다를 뿐이다.
도시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은 비스누람 ‘개인’이지만, 그를 길 떠나게 만든 것은 ‘미디어’였다. 먼저 ‘길’이 생겨났다. 길이 뚫리자 ‘상품’이 들어왔고, 미디어에 의한 ‘소비’가 강요되었다. 나의 통역을 맡아 주었던 반쟈데 씨가 카트만두 곳곳에 찾아온 삼성과 엘지의 나라, 한국의 이미지를 따라 길을 떠났듯, 나가르코트의 아이 비스누람 역시 도시 카트만두가 주는 소비의 이미지를 따라 길을 떠났을 것이다. (123~124쪽)
목차
추천사
동아시아의 난장이 속으로
아동노동과 빈곤의 방정식
폐비닐 더미보다 더 좋은 건 없어요
채석장의 하얀 들꽃
달 뜨는 집의 일하는 아이들
새벽을 여는 작은 별들
터미널, 이주를 품다
글을 마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