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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799101 / 574쪽 152 x 22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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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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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제2차 세계대전 편집위원회
- 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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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중국인과 한국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위대한 위인이요 영웅인 안중근을 역사 여울목 깃대로 꽂아놓고 한국근대사를 읽는 눈길로 나아가기 시작한 역작이다.
[특징]
한국근대사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짜여진 권력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이행되는 과정이었다. 그 이행의 원동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조선후기 사회의 성장과 외부세계로부터의 충격이었다. 다시 말하면, 외세의 침략에 직면하여 민족을 지키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민족의 뿌리와 정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큰 강줄기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특히 한글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정보의 전달속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새로운 사상의 출현과 유입은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특히 동학의 출현으로 한국근대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인간을 ‘신적 존재’로 이해하는 동학의 이론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양인들의 해석을 본질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절대자인 신 중심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에 젖어 있던 서양과는 상당히 다른 인간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권력관계의 출현은 성리학적 권력관계를 유지하려던 지배세력과 외세의 협공으로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외세와 부외(附外)세력은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파괴적이고 침략적인 권력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1895년 민을 기반으로 한 동학세력의 와해는 주체적 권력관계의 형성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었고, 그 결과 일제와 부일세력을 중심으로, 반역사적이며 민을 권력에서 철저하게 소외시킨 세력이 한국근대를 장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단계에서 불의한 권력의 출현에 저항하면서 평화를 중심으로 한 권력관계의 형성을 역사 전면에 내세운 일련의 세력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안중근이다. 안중근을 단순히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독립운동가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역사의 현실과 괴리된 천주교 상층부와 마찰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천주교의 토착화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또한 중국의 \"민우일보(民?日報)\"의 평가에서 보듯이 인도(人導)철학을 격변시킨 행동가였다. 민우일보의 이러한 평가는 제국주의가 세계를 병들게 하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그가 반제의 이론으로써 ‘평화’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사실을 꿰뚫어본 통찰력의 결과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세계사적 위치를 다시 평가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평가와 수많은 추모의 글에 볼 수 있듯이, 안중근은 중국인들의 반제국주의 투쟁 에너지를 제공하였고,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한중우호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평화세력의 성장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이 안중근을 신불(神佛)로 섬겼다는 일본의 기록에서 보듯이, 한국근대사 속의 신적 존재로 추앙받았다. 김구는 그를 사당의 신주에 비유하여 한국인의 정신적 기둥으로 삼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표적 사회주의 운동가인 김산(장지락)도 그를 독립운동의 모델로 삼았다. 이처럼 안중근은 좌우 독립운동세력의 간극을 메우는 동시에 사상적 행동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남북이 분단된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남과 북에서 동시에 존경을 받는 안중근은 남북한 서로에 대한 질시와 반목을 없애고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사상적 에너지이자 우리 민족의 자산으로 역사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특히 그의 '동양평화론'은 100년 전에 태어났음에도 지금까지도 여전히 살아 숨을 쉬는 이론이라는 사실에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동양평화론'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적인 일본을 타락의 끝에서 건지기 위한 것이었다는 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침략을 반대하던 일본인들이 그를 ‘의사(義士)’로 평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적국 일본인마저 감싸 안고 나가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종교사상에 기반하는 것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한국(각국) 독립’과 ‘동양(세계) 평화의 구현’이 천의(天意, 하느님의 뜻)라는 종교적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천의의 실천이야 말로 참된 교인의 의무이자, 민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겼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인류를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