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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백기완 저 | 한겨레출판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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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313552 / 479쪽 152 x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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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일생을 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수많은 우리말들의 원작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으로 투쟁했던 민중대표

백기완이 증언하는 한국 현대사와 그의 삶

영원한 거리의 싸움꾼, 백기완 선생의 한살매(일생)를 정리한 자서전이 나왔다. 민주화의 여명이 움트기 전 대한민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기록이다. 일제 치하에서 배고픔과 싸워야 했던 어린 시절, 6.25와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투쟁, 이산의 아픔과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의 엠비 대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그 삶이 한 편의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고 맹세했던 자신의 시처럼, 굴곡진 현대사의 무대 한켠에는 항상 스포트라이트와 상관없이 굳건히 버티고 선 ‘민중대표’ 백기완이 있었다. 미련할 정도로 타협과 한숨을 모르는 그 성정은 어떤 고비에도 휘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삶은 평생 옥살이와 가택연금, 고문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누비는 이 땅의 거리 곳곳에는 그의 한숨과 절망과 피와 땀이 멍에처럼 새겨져 있다.
직접 ‘재야’라는 말을 만들고, 들녘의 이름 없는 풀잎으로 서서 비바람, 눈보라를 맨몸으로 맞으며 고집스럽게 ‘해방통일’을 위한 싸움꾼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그의 회고록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들

그는 자신의 한평생이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남북통일과 노동자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일생을 바쳤지만, 경제지상주의에 빠진 사람들과 악화하는 남북관계 등 작금의 세태는 단편적으로 볼 때 그의 삶이 완전한 실패였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한평생 어두운 곳에서 투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와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는 반 발짝씩이나마 진일보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 인생은 한마디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패배의 연속이었음을 우리 시대는 증언한다. 그리고 2009년, 거침없이 뒷걸음질하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이 시대는 또다시 누군가의 ‘실패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바로 절망과 좌절과 패배의 기억들이다. 어미를 찾아 기꺼이 어둠 속을 찾아드는 반딧불이처럼, 그는 여생도 기꺼이 실패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겠노라 다짐한다. “백술(백 번)을 달구름(세월)에 깎여도 기완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라는 자신의 시처럼, ‘철들 줄 모르는’ 거리의 싸움꾼은 오늘도 용산참사 현장으로, 쌍용차 투쟁현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순우리말로 쓴 최초의 자서전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단어 하나, 한자어 하나 섞지 않고 순우리말만 썼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늙기를 거부하는’ 그다운 시도라고 할 만하다. 그 결과 시인이면서 직접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의 우리말을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이 집대성된 자서전이 탄생했다.
혹자는 직접 만들어낸 낱말과 어린 시절 들었던 사투리로 구성된 리드미컬한 구어체 문장들로 이어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이 이문구의 <관촌수필> 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순우리말을 만들게 된 에피소드들도 소개돼 있다. 한 예로 달동네라는 단어는 육이오 때 관악산 사당동 산자락에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모아 ‘달동네 학교’라고 썼던 데서 연유한다. “비록 다 타버린 잿더미이지만 그 위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마침 달이 뜨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달동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 외에 본인이 직접 지은 영화대본과 시, 연설문,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신화 등이 섞여 있어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 소개

백기완은 여든다섯 살이다.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에 뛰어든 이래 평생 민주화운동 현장을 지켰다. 1973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979년 계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노동자들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팔팔했던 1980년대나 해고노동자의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는 노년의 2017년이나 ‘이야기꾼 백기완’의 면모는 변함이 없다. 
언젠가 말했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다구 있는 인물이었다구.”

책 속에서

“야 부심아, 배고픈 것쯤은 참아야 돼. 모두가 주리고 있는 이참에 제 배지만 부르고 제 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어더렇게 되는 줄 알아. 키가 안 커. 너, 어서 커서 어른이 되고 싶잖아. 그러니까 배나 고프다고 허리를 꺾으면 안 되는 거야.”
“배가 고프다고 울면 키가 안 큰다”는 바람에 쭉박(겁)이 나 눌데(방) 윗목에서 쿨적이자 난딱 안아다가 아랫목에 뉘어주시던 아, 우리 어머니. 달구름(세월)은 흘러 어느덧 일흔두 해, 그런 어머니와 열세 살에 헤어지고 나서 여든을 바로 눈앞에 둔 입때까지 한술(한 번)도 찾아뵙지를 못했을 뿐더러 업어드리지도 못했다.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구수한 팥밥에 감은 내 한술 물씬한 우거짓국 한 그릇 못 올려드린 채 얄궂은 밤은 덧없이 깊어만 간다. -16쪽

맨바닥만 기고 살아 서럽기 그지없는 사람들, 그들을 일으키는 건 무엇일까.
따끔한 한 모금? 아니다.
그러면 늦은 밤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밑(순)두부 한 바가지? 아니라니까.
그러면 무엇이드냐. 맨바닥을 기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그때 무언가가 비로소 벌떡 일어난다는 걸 나는 몸으로 겪어본 사람이다. -76쪽

“백기완이 너도 젊은 날이 있었드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맞대한다.
“그렇다. 나도 내 뼈를 갉아 애나무로 삼고, 내 피땀을 뽑아 거름으로 삼으며 온통 불을 지른 젊은 한때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런 젊은 날에 마주해 요만큼도 뉘우침 따위는 안한다. 도리어 모이면 으르고 뽑아대고 뜨거운 것이 빛나던 그런 젊은 날의 눈물이 있었다, 이 새끼들아”라고 맞대하기를 머뭇대질 않는다. -142쪽

여보게 젊은이들!
이 썩어문드러진 모랏돈빼꼴(독점자본주의)에 살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낑길 생각일랑은 아예 하질 말게. 아니 모랏돈빼꼴을 믿고 따르고 함께 살 생각일랑은 아예 가짓(시늉)도 말게. 그보다는 이 썩어문드러진 모랏돈빼꼴을 왕창 부림(변혁)하려는 어기찬 물살에 한 방울 맑은 이슬로 뛰어들어야 하질 않겠는가. -250쪽

사람의 마지막이란 삶의 들락(문)이 ‘꽈당’ 하고 닫히는 게 아니다. 죽음이라는 그 마지막이 바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첫발임을 알아야 한다. 내 한살매란 갖은 꺾임(좌절)과 온갖 깜떼(절망)로 내몰리는 썰품(비극)의 거퍼(연속)였다. 여기서 그 꺾임과 깜떼를 도리어 먹거리로 삼질 않으면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니,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 그거이 참짜 사람답게 사는 한살매라. -415쪽

살아보니 생각은 고요한 척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조용할 수가 없더라. 날마다 썩어문드러진 톡(독) 꼬챙이가 덤터기처럼 날아드는데 어찌 가만히 앉았겠는가.
보라, 바다가 저리 일렁이는 건
밑물이 윗물을 뒤집는 물살이지
깨비(신)의 노름(조화)이 아니고야
보라, 가랑닢들이 저리 곤두박질치는 건
물위에 떠 있는 것들의 끝장이지
바다가 꺼지는 게 아니라니까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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