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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고단한 여정 딸과 함께 읽는 답사 여행기

이용재 저 | 부키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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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510555 / 268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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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건축 평론가로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등을 통해 건축물에 담긴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섰다.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겨 궁궐에서 쫓겨난 단종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까지, 그들의 고단한 여정이 남아 있는 옛 건축물을 하나하나 찾아간다. 아빠와 딸의 대화를 통해 딱딱한 교과서 속 선비들이 톡톡 튀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라, 가까운 곳에 이런 역사 현장이 있었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고 찾아가는 답사 여행기
-옛 건축물에 선비들의 발자취가 살아 숨 쉰다!

대개 부모들은 아이들과 역사 현장을 찾더라도 배경 지식이 부족해 아이들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딱딱한 교과서로 배운 역사 인물들에게 이미 흥미를 잃은 상태이기 쉽다. 이 책은 부모와 아이들이 책 속 유적지를 찾아갈 때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역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주변에 있는 역사 현장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해준다. 특히 저자는 아이들이 경쟁만 강요받는 교육에서 벗어나 사람됨을 배우기 위해서는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고 그 방법으로는 답사 여행만 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답사 여행이라고 굳이 애써 멀리 유명한 곳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이 책에 소개된 선비들의 발자취 중 서울 지역만 살펴보더라도 압구정, 망원정, 청룡사, 사육신 묘, 청권사, 새남터 등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남간정사(대전), 환벽당(광주) 등 자신이 사는 곳 주변에 역사적인 인물이 거쳐 간 건축물과 기념물이 숨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름 휴가철 영월에서 래프팅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곳에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잠시 시간을 내 마음의 휴식을 얻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딸과 대화하면서 고전과 역사, 건축에 대한 지식도 함께 전한다. 한시와 사자성어를 틈틈이 일러주는 한편 선비를 소개하는 중간에도 과거 시험이 어떻게 치러졌는지, 호(號)는 어떤 방식으로 붙였는지, 유배지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한자로 되어 있어 잘 이해하기 어려운 벼슬들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서원의 건물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하였는지, 한옥은 왜 위대한 건축물인지 등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저자 소개

문학도를 꿈꿨지만 군인 아버님의 반대로 공돌이가 되었다. 명지대학교 건축과 대학원에서 건축평론 전공하고 다시 글쟁이를 꿈꾸지만 지독한 배고픔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1989년 박봉의 잡지사를 탈출하여 건축전문출판사를 설립했다. 내는 책마다 적자를 헤어나오지 못해 1990년 빚더미 속에 아버님의 강권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결혼한다. 1991년에 외동딸을 출산하고 1993년 나도 돈 좀 벌어 보자.’는 마음으로 펜을 꺽고 노가다 현장으로 갔다. ‘다시는 글 쓰나 봐라. 돈도 안 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IMF 때 전 재산을 날리고 감옥도 다녀오게 된다. 
현실을 떠나 전업 주부가 되어 딸 밥해 먹이고 문화재 답사로 소일거리를 하다 2000년 건축 잡지사 편집장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역시 박봉의 소득이라는 현실에 부딪히며 사직하고 만다. 2001년 건축 현장의 감리로 취직하여 부실 공사 유혹에 맞서다 다시 잘린다. 2002년 도사들의 추천으로 택시 운전을 시작, 주중에 택시 운행 중 스케줄 짜두었다가 일요일 가족과 건축 답사 다니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살았다.
초등학교 4학년 딸에게 이 험난한 세상, 착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인 인문학 교육에 들어갔다. 자꾸 글을 쓰라고 지인들의 꼬드김에 넘어가 11년 만에 인터넷에 청탁도 없는 건축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해, 2003년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모아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를 출간하였으나 역시 돈은 안 되고 이름 석 자만 유명해졌다. 판매 부수 1천 5백 권. 2005년 두 번째 저서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거예요』 출간,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수십 개 언론에 등장하지만 판매 부수는 1천 5백 권에 그친다. 2006년 블로그 개설하고 이용재 알리기에 본격 나선 후, 2007년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을 출간하였다. 이번 책도 안 팔리면 은퇴하겠다고 생각하였으나, 6개월 만에 1만 권을 판매하고 교보문고에서 팬 사인회도 하고, ‘KBS TV 책을 말하다’에도 출연하였다. 당시 PD의 말에 의하면 건축 책으로 ‘KBS TV 책을 말하다’에 출연하기는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택시 기사 5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였다. 대전이 대한민국 중심이라 답사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산을 거쳐 대전으로 남하해 전업 작가로 나섰다. 안 되면 다시 택시기사로 복귀 예정이다.


 


주요 저서로는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아빠랑 함께 보는 우리 옛 건물』, 『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 『선비들의 고단한 여정 - 딸과 함께 읽는 답사 여행기』『딸과 떠나는 성당 기행』 『궁극의 문화기행 1,2, 3』등이 있다

책 속에서

1441년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부인 현덕왕후가 유일한 세자 단종을 낳고 세상을 떠난다. 1452년에는 문종도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부인을 따라 승하한다. 어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네.
단종은 열두 살의 나이에 조선 제6대 왕에 오른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의 어린 나이다. 단종의 삼촌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의 왕위가 탐이 난다. 책사(策士, 남을 도와 꾀를 내는 사람) 한명회를 찾았다.
“이보게, 나 왕 한 번 해야겠소. 방법이 없을까?”
“나리의 형제가 몇 명이지요?”
“내가 팔형제의 둘째고, 서자(庶子)만 열 명, 열여덟 명이네. 많기도 하다.”
“그중 제일 센 왕자를 본보기로 죽여야 합니다.”
“친동생을 죽이라고?”
“아님 말고요.”
“아빠, 한명회 호가 압구정이야?”
“응.”
“그럼 내가 태어난 압구정동이랑 상관있는 거야?”
“응. 한명회가 압구정에서 학문을 닦았거든. 자고로 호는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쓰는 게 원칙이야. 그래서 당(堂), 암(庵), 정(亭)으로 끝나는 호가 많아.”
所處以號 소처이호 생활하거나 인연이 있는 처소로 호를 삼는다.
所志以號 소지이호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호를 삼는다.
所遇以號 소우이호 환경이나 여건을 호로 삼는다.
所蓄以號 소축이호 좋아하거나 간직한 것으로 호를 삼는다.

-‘궁궐을 나온 원통한 새 단종’ 중에서


어계 조려 선생은 당나귀를 타고 단종이 머물던 청령포를 방문해 문후(問候, 웃어른의 안부를 여쭘)를 드린다. 단종은 열다섯 살, 어계는 서른여섯 살이었다.
“진지는 드셨는지요?”
“고사리만 먹는다네.”
“수양대군이 쌀을 안 보내주나요?”
“어떻게 그걸 먹겠나. 낚시나 하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어계는 이후에도 영월을 네 차례 더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단종의 승하 소식을 듣고 다시 영월로 간다.
“전하 시신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알려드리면 저희 집안 멸족됩니다.”
“뭐라.”
“원호 선생이 어딘가에 모셨다는 이야기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와 3년을 시묘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년 동안 누룽지만 먹었다. 그러고서 충남 공주 동학사를 찾아 단종의 제단을 쌓았다.
(…)
어계 선생은 시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계고택의 현판을 다시 걸었다. 원북재(院北齋). 영월에 계신 단종을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고택은 재실(齋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 되었다. 뒷마당에는 사당을 세웠다. 현판은 조묘(笭廟). 선생은 채미정 안마당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얘들아, 막걸리 내와라.”
“안주는 무엇으로 준비할까요?”
“고사리.”
어계는 1489년 눈을 감았다. 향년 70세. 지존(至尊) 단종 떠나시고 33년 동안 고사리만 드시다 가신 거다.
“아빠, 어떻게 고사리만 먹고 33년을 살아?”
“선비들은 그래. 아빠도 라면만 먹고 사는걸 뭐.”

-‘고사리만 캐먹고 살리 조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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