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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9867978 / 2500쪽 420 x 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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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근묵, 600년 한국서예사의 집대성 에 실린 묵적을 서체별로 보면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서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해서 57점, 전서와 예서가 16점이어서 전․예․해․행․초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 여기에 실린 글씨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운필(運筆)한 것이다. 그 필치는 유려하고 창달(暢達)하여 보는 이의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하는 감동력을 가졌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의도적인 작태를 무시한 서간의 서품(書品)은 그 자체로 글씨의... 근묵, 600년 한국서예사의 집대성 에 실린 묵적을 서체별로 보면 행서가 595점, 초서가 468점으로 행초서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해서 57점, 전서와 예서가 16점이어서 전․예․해․행․초의 구색을 모두 갖추었다. 여기에 실린 글씨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운필(運筆)한 것이다. 그 필치는 유려하고 창달(暢達)하여 보는 이의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하는 감동력을 가졌다.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의도적인 작태를 무시한 서간의 서품(書品)은 그 자체로 글씨의 본령이며 작자의 개성이 그대로 살린 작품이다. 의 글을 문장 종류별로 분류하면 서간(書簡) 724, 시(詩) 359, 부(賦) 7, 서(序) 5, 기(記) 10, 발(跋) 2, 잠언(箴言) 1, 법어(法語) 1, 화제(畵題) 3, 제액(題額) 15, 증언(贈言) 2, 찬문(贊文) 1, 표제(表題) 1, 유지(諭旨) 1, 물목(物目) 1, 종명(鐘銘) 1, 비명(碑銘) 2점이다. 서간 곧 편지가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근묵에 수록된 서간들 에 실린 편지의 내용은 다른 어떠한 종류의 글보다도 다양하고 풍부한데, 그 중에서도 선물과 관련된 것이 가장 많다. 물자가 넉넉하지 못하고 시장과 화폐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식량, 약재, 기호품, 특산물 등을 왕래망을 통하여 조달했다. 지방 수령이 선물과 함께 보낸 편지와 그것을 받은 조정의 관리가 쓴 답장이 선물과 관련된 편지 중 가장 많다. 그 밖에 인사청탁, 노비추쇄, 운구(運柩), 질병, 의약, 관혼상제, 산송(山訟), 과거(科擧), 식량, 음식, 술, 흉풍(凶豊), 서적, 출판, 조보(朝報), 경연(經筵)의 정보 등에 관한 솔직한 사연이 많으며, 의식주, 생활도구, 탈것, 약초, 상호간의 호칭 등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낱말도 많이 나온다. 요컨대 의 편지들은 문화사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간찰과 수결, 그리고 한국전각사의 연구자료 을 두루 일람하면 조선 전기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간형식의 변천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조선 시대를 두루 거치면서 편지지의 모습이 변화하는 양상이 뚜렷이 구별되고, 피봉을 작성하는 형식이나 상대를 높이는 범절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고을 수령, 상주, 스승, 연장자 등에게 편지를 올릴 때는 단정한 해서로 써서 경건함을 더하는 등 편지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아울러 수결(手決: 서압[署押], 화압[花押]이라고도 함)의 양상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에는 서압이 매우 많이 실려 있다. 서압이란 현대의 싸인(sign)에 해당하는 것으로 피봉의 이음매에 써넣음으로써 타인이 문서를 열어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 이 서압의 가치는 매우 중요한데, 바로 필적의 진위를 판정하는 믿을 만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서예사는 물론 고서화의 진위 판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에는 다양한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주로 시고(詩稿)에 많이 찍혀 있는데, 고상한 글씨와 내용에 걸맞게 필적의 미감을 살려주고 있다. 시기별로도 두루 걸쳐 있는데, 조선 중․후기에는 가문에 따라 인장을 애용한 경우가 많이 있어서, 조선 고유의 전통적인 낙관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 후기가 되어 청나라 학계와 활발한 교유를 하면서 관료와 학자를 막론하고 인장을 사용하는 예가 매우 많아졌는데, 그 수준 또한 매우 높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들어 일본풍의 전각방식이 들어오면서 전각의 기풍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눈으로 보아도 느낄 수 있다. 시전지와 한지 연구자료 앞서 언급한 가치 이외에도 시전지(詩箋紙)와 한지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과외의 소득이다. 시전지는 시나 편지를 써보낼 때 쓰는 종이를 가리키는데, 그 수량 또한 적지 않게 실려 있다. 이 시전지는 작가의 취향에 맞게 독특한 문양을 찍어 사용하였는데, 대개 목판을 이용하여 채색을 가미하여 찍었다. 이러한 시전지는 조선시대의 채색판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그리고 고해상도로 영인하여 한지의 질감도 엿볼 수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한지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창덕궁에서 담배를 재배한 정조 임금(智188)
친척에게 물품을 하사한 정조임금의 물목은 매우 특이하다. 이때 하사한 것으로 벼 한 석, 담배 두 봉, 게장 한 항아리, 밤 한 말이다. 1792년에 상림(上林)에서 재배한 벼가 소출이 많아 예전에 말로 보내던 것을 지금은 석으로 보낸다 하였고, 내원(內苑)에서 재배한 담배가 토양이 적합하여 맛이 좋아 평안도 삼등(三登)에서 나는 질 좋은 담배에 못지않다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상림은 왕의 농장이 있었던 창덕궁의 후원을 가리키는데, 동궐도를 보면 지금의 창경궁 춘당지 일대에 있던 넓은 논으로 추정된다. 내원이란 통상 옥류천 주변 깊숙한 곳을 가리킨다. 원(園)이란 새로 조성한 수원의 현륭원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內帑之印’이란 도장도 매우 보기 드물다.
...아내를 잃었을 땐 방랑이 최고 ―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편지(智266)
이 편지는 아내를 잃은 사람을 위로하면서 쓴 것이다. 추사는 자신이 일찍이 아내를 잃어 봐서 그 슬픔을 잘 안다고 하면서 해학 겸 위로를 하였다. 추사는 아내를 잃었을 때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을 삭이는 데는,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비법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좋은 품질의 용정차(龍井茶)와 대나무 필통을 받고 종이부채에 그림을 그려 돌려보내는 등 내용은 짧으나 매우 재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헤이그에서 순절한 이준을 애도 ― 이준(李儁)의 시와 오세창의 추도사(智470)
이 작품은 오세창이 수집한 이준(李儁) 열사의 시고에 오세창이 추도사를 덧붙인 것이다. 오세창은 1907년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가서 순절한 이준 열사의 거사를 흠모하며 천고에 길이 추앙받으리라는 찬사를 올렸다. 이 시는 1933년에 덧붙인 것인데, 근묵을 두루 보면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시대의 인사들은 주로 절개가 빼어난 사람들을 위주로 편집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매국노 이완용도 글씨로 이름이 있어서 선집되었으나, 민족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거나 암흑기에 들었을 때 빼어난 절개를 보여준 인물의 필적을 뽑아 영구히 전하게 하려는 위창의 우국충정을 엿볼 수 있다.
...고환이 퉁퉁 부어 ― 가장 은밀한 이용백(李蓉白)의 편지(智472)
이용백(李蓉白)의 편지를 보면 편지란 두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유용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이용백이 풍습(風濕)으로 인해 하초의 병이 되어, 오른쪽 고환이 북처럼 커져서 겉 거죽이 감처럼 붉고 윤기가 난다고 한 내용이 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참으로 난감한 내용을 실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선인들은 편지를 통해 소식을 묻는 것은 물론, 남에게 말 못할 크고 작은 문제도 상의하여 깊은 교유를 유지하였다.
목차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선생이 모아서 엮은 총34첩의 글씨첩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다섯 권의 책으로 엮었다. 약 600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우리 선조 1,136분의 묵적(墨蹟), 1,136점?이 망라되어 있다.
전 작품을 인(仁)․의(義)․예(禮)․지(智) 네 권에 영인해 싣고, 신(信) 권에 번역문을 실었다. 정밀한 촬영을 거친 작품들은 1:1 실물대 영인(책이 사이즈는 가로 30cm․세로 42cm, 다섯 권 전질의 무게는 30kg에 육박한다)을 원칙으로 하여 원본의 색감과 질감을 그대로 드러냈으며, 또한 번역문에도 상세한 주석을 달아 놓았다. 이로써 서예를 전공하는 분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으므로, 의 가치에 걸맞는 모습을 비로소 갖추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서예사의 집대성이랄 수 있는 은 경제사․생활사․사회사 연구의 필수작일 뿐 아니라, 한국서예사의 기준작이며 동시에 간찰과 수결 그리고 한국전각사의 소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