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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일도 회고시 (역주)

유득공 저 | 푸른역사 |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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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510920 / 272쪽 153 x 224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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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단군조선부터 고려 왕조까지 옛 왕도를 노래한 역사서 북학파 실학자로 조선 후기 학문과 사상을 빛낸 유득공의 남다른 역사 인식을 담은 저작 ≪이십일도 회고시≫가 출간되었다. 원로 국학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을 기축으로,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實是學舍古典文學硏究會 회원들이 옮기고 엮었다. 모임의 이름답게 실사구시 학문과 연관된 고전문학을 함께 읽고 꼼꼼하게 번역해온 회원들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난 ≪이십일도 회고시≫는 여러 이본들과의 비교, 인용 서목들의 일목요연한 정리, 적확하고 치밀한 주석... 단군조선부터 고려 왕조까지 옛 왕도를 노래한 역사서 북학파 실학자로 조선 후기 학문과 사상을 빛낸 유득공의 남다른 역사 인식을 담은 저작 ≪이십일도 회고시≫가 출간되었다. 원로 국학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을 기축으로,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實是學舍古典文學硏究會 회원들이 옮기고 엮었다. 모임의 이름답게 실사구시 학문과 연관된 고전문학을 함께 읽고 꼼꼼하게 번역해온 회원들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난 ≪이십일도 회고시≫는 여러 이본들과의 비교, 인용 서목들의 일목요연한 정리, 적확하고 치밀한 주석 작업, 원본에 충실한 번역 등을 통해 고전 번역서의 질을 한 단계 높인 결과물이다. ≪이십일도 회고시≫는 단군조선으로부터 고려왕조까지 조선 강역에 존멸했던 21개 왕도王都를 회고시로 읊은 작품이다. ≪발해고≫, ≪사군지≫와 더불어 역사지리 분야에서 유득공의 위상을 높인 대표작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나 한중 문화 교류사에서도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조선 후기 들어 우리 역사를 다룬 시가 다채롭고 활발하게 창작되어 ≪해동악부≫와 같은 거편대작이 출현하기도 했지만, 회고시라는 제목으로 조선 강역의 전 역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저작은 이전에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국내에서보다 중국에 먼저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778년에 처음 완성된 ≪이십일도 회고시≫는 바로 그해 3월 연행을 떠나는 이덕무와 박제가 편에 보내져 중국의 문인학자들에게 소개된다. 이때 반정균으로부터 “후세에 반드시 전해질 작품이다必傳之作”라는 평을 받는 등 당시 한중 문화교류에 참여한 인물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그 뒤에도 기윤, 옹방강 등 청대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의 손을 거쳐 1877년에는 조지겸의 ≪학재총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유득공이 활동하던 18세기는 한중 문화교류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홍대용, 박지원 등 이른바 ‘북학파’라는 일군의 지식층이 출현한 시기였다. 청조의 문물을 배운다는 의미의 ‘북학’은 일방적 수용으로 비칠 수 있으나, 실상은 우리나라의 시문집과 금석문이 중국으로 활발하게 전해지며 조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명시名詩를 선집한 책들이 편찬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자료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축적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한중 문인들의 교유는 우리나라 지식인들로 하여금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하고, 저술과 창작에 자극과 활력을 주고 있었던 바, ≪이십일도 회고시≫는 바로 그러한 성과의 하나로 새롭게 주목된다. 지지地誌를 열람하면서 한 수의 시를 얻으면 곧 여러 날을 고심하며 읊조리게 되니 그렇다면 ≪이십일도 회고시≫를 저작한 구체적 동기나 목적에 대하여 유득공 자신은 무엇이라고 밝혔을까? 저작 동기는 대개 서문에서 밝히나, 이 작품이 처음 저작되었을 때 쓴 정식 서문은 없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785년과 다시 7년이 지난 1792년에 과거를 회상하며 지은 “제이십일도회고시”라는 글이 서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글에는 ≪이십일도 회고시≫를 창작하게 된 과정이 엿보인다. “회상해보니 무술(1778)년 무렵 종현 부근 산턱에 우거(寓居)하고 있었는데 ······ 때때로 우리나라의 지지地誌를 열람하면서 한 수의 시를 얻으면 곧 여러 날을 고심하며 읊조리게 되니 어린 아들과 계집아이 종이 모두 이를 듣고 외울 정도였다. 내 마음 씀이 얕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십일도 회고시〈서序〉중에서 1778년 유득공은 오늘날 명동성당 부근인 ‘종현’에서 한가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때 우리나라의 지지를 열람하며 회고시를 창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회고시’는 본래 작자가 역사 유적지를 직접 보고 느낀 감회를 표현하는 한시의 한 장르다. 그러나 유득공은 지리지를 읽고 유적지를 상상하며 회고시를 짓는 특이한 방식을 취했다. 유득공이 이와 같은 방식을 택한 이유는 자신이 직접 가보지 못한 옛 왕도들까지 모두 창작의 대상으로 삼아, 21개 왕도 전체를 연작의 회고시로 저작하려는 기획에 따른 것이다. 비록 북방의 몇몇 나라들은 제외되었지만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다루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서문 역할을 하는 이 기록들의 대부분은 ≪이십일도 회고시≫가 중국 측 인사들로부터 받은 관심과 반응을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어, 유득공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1785년에 쓴 글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못 즐거워할 일이며, 후세에 전해지고 전해지지 못하고는 꼭 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저작 동기가 후세보다는 당대 중국 문인학자들과의 소통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은 조선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이해 부족이나 오해가 한중 교류의 장애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학자들의 연행 경험을 통해 중국에서 조선은 낮선 변방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여 우리나라를 중국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었는데, ≪이십일도 회고시≫도 바로 이러한 의식을 배경으로 저술되었으며, 실제로 우리의 문학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 ≪이십일도 회고시≫는 18세기 한중 문학 교류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지식인의 심금을 울리다 이번에 번역된 ≪이십일도 회고시≫는 유득공이 최종적으로 완성한 ‘재편본’이다. 각 편의 구성은 나라마다 개괄적 설명을 붙인 ‘작은 서문’, 본장으로서 시작품, 자주自註, 이렇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서문’은 각 나라의 시조 신화나 건국 유래 및 연혁 등을 설명한 뒤 왕도의 지리적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먼저 ≪사기≫, ≪한서≫, ≪삼국지≫, ≪위서≫, ≪당서≫ 등 중국 측 정사正史를 반드시 먼저 인용하고, 이어 ≪고려사≫, ≪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문헌비고≫, ≪삼국사기≫ 등 우리나라의 국고문헌을 인용하는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식을 택한 이유는 중국 역사서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해설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유득공은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서문을 쓰면서, 고려 이전 시대를 다룬 우리나라 역사서는 신뢰할 수 없거나 소략함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중국의 21사에서 우리나라 관련 자료만을 수집·정리하는 새로운 저술을 기획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이 저술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으나, ≪이십일도 회고시≫ 중 나라에 대한 설명 부분은 그 단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품은 역사의 객관성을 중시한 해설부분과 달리, 시인의 주관적 관점이나 서정성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이를 유득공의 민족적 역사의식의 소산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 등 영웅명장을 통해 고구려의 진취적 기상을, 공후인, 김생의 글씨, 솔거의 그림 등을 통해 민족문화의 자존과 긍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집 전체를 놓고 본다면, 이와 같은 일관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창작했다고 보기 어렵다. 예컨대, 역사적 관점에 입각했다면, 역사서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신라의 문무왕이나 김유신, 고려의 무신집권, 몽고침입 등과 같은 중요 대목들이 들어가야 할 터인데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는 유득공이 지리지를 보면서 회고시를 지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보다 지리지의 산천, 풍속, 고적 등의 기사로부터 비교적

저자 소개

  • 저자 : 유득공
지은이_ 유득공柳得恭(1748~1807)
자는 혜보惠甫, 호는 영재?齋, 고운당古芸堂, 가상루歌商樓 등이며, 본관은 문화文化다. 서족 출신으로, 20대부터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북학파’ 또는? ‘이용후생학파’로 불린다. 정조의 지우를 입어 규장각 검서로 발탁된 뒤, 제천·포천·양근 군수 및 풍천 부사를 역임하는 등 내외직을 오가며 국고문헌 정리사업에 이바지하였고, 연행을 세 차례 다녀왔다. 주요 편찬서 및 저서로는 ≪동시맹東詩萌≫, ≪병세집竝世集≫, ≪난양록?陽錄≫,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 ≪사군지四郡志≫, ≪경도잡지京都雜志≫,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영재집?齋集≫ 등이 있다.
역주_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는 벽사 이우성 선생과 젊은 제자들이 모여 우리의 한문고전을 정독하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1993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독회를 열어 고전을 강독해 왔고, 그 결과물의 일부를 ≪이향견문록≫, ≪조희룡 전집≫, ≪이옥 전집≫, ≪변영만 전집≫ 등으로 정리해 출간하였다. 고전 텍스트의 정독이야 말로 인문학의 기초이자 출발점임을 명심하며 회원들은 이 모임의 의미를 각별히 여기고 있다.

목차

목차
책을 내며
유득공의 이십일도 회고시에 대하여
이십일도 회고시 번역문
서ㆍ단군조선ㆍ기자조선ㆍ위만조선ㆍ한ㆍ예ㆍ맥ㆍ고구려ㆍ보덕ㆍ비류ㆍ백제ㆍ미추홀ㆍ신라ㆍ명주ㆍ금관ㆍ대가야ㆍ감문ㆍ우산ㆍ탐라ㆍ후백제ㆍ태봉ㆍ고려
이십일도 회고시 원문
주석
부록
이십일도 회고시 인용서목에 대하여
이십일도 회고시의 판본에 대하여
이십일도 회고시 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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