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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047353 / 287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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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우리에게 '루스벨트의 뉴딜은 과연 경제 위기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실천이었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밖에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한다.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뉴딜이 파시즘, 나치즘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그렇게 당대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재구축하면서 뉴딜. 파시즘. 나치즘이 공유했던 공통요소들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공황의 위기에서 국가 통제적 경제가 어떻게 국민의 희망이 되었는지, 전체주의적 흐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세계적 문화사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뉴딜은 파시즘ㆍ나치즘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과연 경제 위기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실천이었나? 미국은 나치즘과 파시즘에 맞선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나?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1930년대 뉴딜의 미국과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즘의 독일, 이 세 나라의 정권들은 전혀 대조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뉴딜, 파시즘, 나치즘 사이에 숨어 있는 공통성을 찾아내는 쉬벨부시는 전체주의 체제의 인기에 대해 독창적이면서도 논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루스벨트, 히틀러, 무솔리니의 정치권력은 파탄난 국가를 구할 유일한... 뉴딜은 파시즘ㆍ나치즘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루스벨트의 뉴딜은 과연 경제 위기에 대응한 미국의 강력한 실천이었나? 미국은 나치즘과 파시즘에 맞선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나?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1930년대 뉴딜의 미국과 파시즘의 이탈리아와 나치즘의 독일, 이 세 나라의 정권들은 전혀 대조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뉴딜, 파시즘, 나치즘 사이에 숨어 있는 공통성을 찾아내는 쉬벨부시는 전체주의 체제의 인기에 대해 독창적이면서도 논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루스벨트, 히틀러, 무솔리니의 정치권력은 파탄난 국가를 구할 유일한 권위체로서 개입했다. 이 시기에 출현한 새로운 유형의 국가는 선전과 언론에 의해 받쳐졌고, 카리스마적 인물에 의해 지도되고, 안정과 힘을 추구한 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하면서 확고해졌다. 거대한 공공사업 프로그램들은 인민에게 일자리를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정부의 권위를 확신시켰다. 이 과정을 추적하는 쉬벨부시는 깜짝 놀랄 만한 공통성을 폭로한다. 미국의 TVA 댐과 독일의 아우토반과 이탈리아의 폰티네 습지 개간 사이의 상징적 중요성, 루스벨트의 라디오 노변정담과 히틀러의 대중 집회가 가진 매력적인 설득력, 기념비적 건축물의 대유행, 집회와 퍼레이드와 캠페인, 국가에 열광적으로 협력한 충성스런 추종자와 지지자로서의 시민들, 어디에나 있는 깃발․현수막․배지, 행정부로의 권력 집중 …….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성취를 보인 세 국가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간의 상호 수렴이자 일종의 벤치마킹이었다. 루스벨트, 무솔리니, 히틀러. 이들의 뉴딜은 1930년대에 어떻게 국민의 희망이 되었나? 21세기 새로운 위기 앞에 다시 등장하는 오늘날의 뉴딜은 당시의 뉴딜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대공황에 맞선 각 정부의 통제 경제는 어떻게 국민의 희망이 되었고 전체주의적 국가 경영의 흐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세계적 문화사가의 새로운 통찰은 뉴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한다. 그리고 전제 군주적 전체주의 정부들을 그토록 인기 있게 만들었던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원인들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뉴딜 정책에 관한 본격적인 비교․분석 대공황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나타난 세 가지 뉴딜. 그것은 이탈리아의 파시즘․독일의 나치즘․미국의 뉴딜이었다. 세 가지 뉴딜은 ‘위기 속에서’ 그 ‘위기를 이용해’ 정권을 잡았고 ‘위기에 맞선’ 거대한 기념비적 사업들을 단행했다. 이는 왜 뉴딜과 파시즘과 나치즘이 동시대에 등장했고 어떻게 똑같이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저자 쉬벨부시는 이들 정권들의 정책들, 그리고 사회와 정부에 대한 대공황 시대의 대중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세세하게 연구해 재구축함으로써 파시즘․나치즘․뉴딜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이해로 이끈다. 이를 통해 독자는 미국의 뉴딜이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독일, 나아가 스탈린의 소련과도 닮았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때에 새로운 유형의 국가가 출현했다. 이 국가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인격화되었고 강력한 국가 개입과 사회적 통제로 자유주의를 대체했다. 한편으로는 선전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힘과 안정을 보여 주는 공공사업들을 통해 강력한 정부의 힘을 선보였다. 비로소 인민은 ‘국민’이 되었고, 국가는 ‘조국’이 되었다. 이 새로운 국가 개조 사업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저자는 카리스마적 리더십, 선전과 언론 통제, 이데올로기, 지역주의, 대규모 공공사업들로 나눠서 살펴본다. 그렇지만 저자는 뉴딜과 파시즘과 나치즘이 공유했던 공통 요소들을 드러내 보이면서도, 루스벨트․히틀러․무솔리니로 인격화된 정치 체제들을 동등하게 다루지도 민감한 차이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뉴딜과 전체주의적 독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들을 드러낸다. 전체주의적 정권들이 그토록 인기 있었던 이유는 오늘날 전체주의와 동일시되는 특징들, 즉 순응을 위한 정치적 압력, 억압, 반대자에 대한 국가 테러, 비밀경찰 기구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대중이 이끌렸던 것은 자신들이 무시받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서 취급받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대중은 자신들이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며 국가라는 새로운 계급 없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와 안전과 연대를 향유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전체주의는 평등주의적 공동체로서 국가를 바라보는 환상으로부터 이득을 보았다. 지도자와 기념비적인 공공사업 모두에 구현된 새로운 국가 비전, 동시에 이들 모두를 통합할 수 있었던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뉴딜은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대응이었는가? 암묵적 항복이었는가? 뉴딜은 전체주의적 정권들을 그토록 인기 있게 만들었던 요소들을 흡수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유효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쉬벨부시의 시선은 그 답으로 향한다.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차용되고 인용되는 ‘뉴딜’에 관한 고찰 절망의 시대에 해법처럼 등장했던 그 세 가지 뉴딜들을 쉬벨부시는 정치․경제․사회학적 관점에서 다시 비교․고찰한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에 총체적인 전체주의의 등장은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이런 의미에서 1930년대는 오늘날의 사회 체제를 만들어낸 기원이자 역사적 원류라 할 만하다. 사회의 전체주의적 기획, 이 속에서 국가주의 탄생 배경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공황의 위기에서 국민의 희망이 되었던 경제는 무엇이었고 전체주의적 흐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한 세계적 문화사가의 통찰을 빌어, 오늘날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뉴딜을 해부할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그리고 루스벨트는 국민 투표로 선출된 리더십의 사례들로 간주되었다. 즉 서로 다르지만 철저하게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독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준군사적인 폭력 집단과 조직화된 억압적 국가 기제를 갖고 있는 파시즘 및 국가사회주의의 대중 정당들과, 그리고 다원적 통합이었던 뉴딜 행정부 간의 차이를 몰랐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논평가들과 파시스트 논평가들 모두 사회적으로 정향된 뉴딜의 정책들과 집단성을 강화하는 파시스트 사상들 사이에 많은 유사성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당시의 정치학자들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합의는, 1933년 봄과 여름에 루스벨트 치하의 미국이 일종의 자발적 강화 과정 속에서 탈자유주의 국가로 스스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 p.39
만일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기 때문에 비로소 대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오늘날 역사가들의 합의를 받아들인다면, 파시즘/국가사회주의와 뉴딜 사이에는 한층 더한 유사점이 나타난다. 세 이데올로기들은 모두 자신들의 국민 경제를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재무장과 그에 따른 전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 p.54
오늘날 아돌프 히틀러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는 거울상체로 비춰진다. 사실, 이보다 더 극적인 인물 대비 연구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히틀러는 벼락출세한 서민, 히스테리성 선동 정치가, 사악한 독재자, 야만과 악마와 그리고 전체주의의 화신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루스벨트는 귀족적인 신사, 개인적 정치적 권위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신감 있는 지도자, 자유민주주의적 휴머니즘의 구현자로 호의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당대인들은 상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최근의 몇몇 역사 연구자들 역시 당대인들과 비슷하게 보았다. 그들에게 히틀러와 루스벨트는 모두 대중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사로잡았던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국가사회주의나 뉴딜은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 p.81
국가 주도의 선전부터 국가가 재정을 대는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인민을 “국민화하는 데” 엄청난 강조점을 두었다. 이러한 인민의 ‘국민화’는 이탈리아 파시즘이 리소르지멘토로부터 각색했던 유명한 언명에 기반해 있었다. 즉, “이탈리아를 창조했으니,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 인을 창조할 것이다.” 1930년대의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내셔널리즘이 가진 중대한 결점은 그것이 결코 추상을 넘어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단발적으로 분출된 애국주의를 제외한다면 인민들은 국가와 정서적 거리를 유지했다. 이와 달리 1930년대의 새로운 국가는 그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진정한 조국이 되었다. --- p.146
미국의 국가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기둥들 중에는 군국주의적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평화로운 상인들의 공화국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이러한 자기 이미지는 40년의 냉전 동안에 소리 없이 역전되었다. ‘예방 전쟁’이라는 새로운 독트린과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되었을 뿐이었다. 과거에는 군국주의적 괴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는 미국의 적, 그리고 1945년 이후에는 미국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국인 독일이 이라크 침공에 참가하기를 거부한 것은 역할의 교환을 강력하게 시사한 것이다. 좀바르트의 상인-전사 이분법의 미국식 버전도 바로 그러했다. --- p.235
목차
서론: 비교들에 관하여
1장 친족 관계?
유럽의 관점
미국의 관점
공통의 기반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자들
2장 리더십
루스벨트의 라디오와 히틀러의 집회
3장 선전
상징의 힘
블루 이글
“순응의 상징화”
선전 게임
4장 땅으로 돌아가자
지역주의
정착지
자경 자급 농장
5장 공공사업
아그로 폰티노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
아우토반
에필로그: “우리가 행진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