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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1390224 / 232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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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2009년,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우주 관측 400주년 기념한 ‘세계천문의 해’
2009년은 유엔(UN)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IAU),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천문의 해’이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사용해 천체를 관측한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그 관찰의 결과를 쓴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를 발표했다. 이 책을 그대로 옮긴 것이 이번에 도서출판 승산에서 나온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이다. 또 2009년은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80주년, 인류의 달 착륙 40주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망원경을 사용하여 천체를 관측했다. 갈릴레오는 1609년 11월 20배율 망원경을 만들어 달의 위상변화를 관측하는 것으로 천문학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남긴 기록이 바로 1610년 발표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라는 천문노트이다. 이 책에는 목성의 4개 위성과 많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은하수와 성운들, 지구의 표면과 비슷한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 금성의 위상 변화, 토성의 띠, 태양의 흑점, 초신성 등의 발견이 적혀 있다.
이 소책자에는 그때까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하늘의 비밀을 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관측 결과는 당시 소수만이 인정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결정적으로 지지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갈릴레오가 이 책을 처음 쓸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책을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흥분할 만큼 새로운 발견이었다. -본문 중 ‘옮긴이 후기’에서
그의 관측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입증하는 중요한 결과물이었으나 당시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던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현재의 과학을 만든 큰 업적이 되었다. 갈릴레오의 과학 혁명은 후에 뉴턴의 역학이론 등 수많은 과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주관을 논할 때 사용하는 용어까지 탈바꿈한 것도 갈릴레오의 발견 때문이었다. 그의 발견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지동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고대 우주관-전통적인 자연철학 체계의 기초를 이룬 우주관-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만큼은 결정적으로 밝혀냈다. 그리하여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와 더불어 우리는 근대로 접어든 셈이다. -본문 중 ‘머리말’에서
-본문 중 177쪽의 그림,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과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의해 예견된 금성의 모습
“그가 발견해 낸 이론은 초자연적인 지식의 새로운 증거이며 이제부터 천문학의 역사는 새로 시작될 것이다“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갈릴레오를 하룻밤 사이에 국제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17세기에는 물론 오늘날처럼 뉴스가 순식간에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소식은 외교 상업적 통로를 통해 놀란 만큼 빠르게 퍼져나갔다. … 이제 망원경은 과학 도구로 완전히 수용되었고, 망원경을 통한 발견은 결코 무시될 수 없었다. 이 발견의 함축 의미를 알아내는 일은 여간 절박하지 않았다. 망원경의 발명으로 인해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결은 돌이킬 수 없도록 달라졌다. 이 도구 때문에 과학자들은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우주론적 가정들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케케묵은 지구 중심의 우주론을 완강하게 고수한 사람들도 큰 영향을 받았다. 훗날 태양 중심의 우주론을 주장하는 진영이 최종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전투는 치열했고, 갈릴레오는 그 누구보다 유명한 피해자가 되었다.
-본문 중 ‘맺음말: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 대한 평가’에서
◎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직접 쓴 별의 관찰일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아리스토텔레스 ‘완벽한 우주론’ 뒤집은 근대 과학의 시작이 된 책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며 관찰한 별의 관찰일지인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 갈릴레오 전문가인 미국 라이스대학교 앨버트 반 헬덴 교수의 친절한 해설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장헌영 교수(경북대학교 천문대기과학과)가 천문학자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대학교 1학년 때 천문학개론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국내 최초로 기획·번역해 내놓은 것이다. 이것을 2009년 ‘세계천문의 해’를 맞아 제목에서부터 편집 디자인, 그리고 내용을 수정하는 등 전면적인 개정을 하여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롭게 내놓았다.
갈릴레오가 쓴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와 같은 책은 그 당시 일찍이 나온 적이 없었다. 갈릴레오가 날카로운 통찰력과 뛰어난 지성을 지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의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철저한 실험의 산물이다. 망원경이라는 도구로 태초 이래 감춰져 온 천체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위대한 사람들이 믿어 왔던 것과는 달리, 저는 달이나 그 밖에 천체가 평평하지도, 매끈하지도, 고르지도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달 표면은 거칠고 울퉁불퉁하게 보였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달 표면에는 지구 표면과 비슷하지만 사실상 훨씬 더 커다란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결론 외에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 중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본문 중 33쪽의 그림, 갈릴레오가 흑백으로 그린 달의 모습 가운데 하나
1610년 3월, 달은 매끄러운 공 모양이 아니며 목성의 둘레를 도는 네 개의 작은 달들이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데레우스 눈치우스>가 나오자 세상은 떠들썩했다. 이 책은 베니스에서 출간된 초판 550권이 일주일 만에 다 팔릴 정도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갈릴레오는 어떻게 8개월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별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갈릴레오는 여러 가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의 기능을 파악해 망원경을 개량했고 그것으로 직접 관찰했다. 세 개의 작은 별들이 목성의 적도와 나란한 방향이었다가 며칠 후에 네 개의 별들이 목성 주위에 나타난 것이다. 갈릴레오는 이 별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목성의 달(위성)임을 확신했다. 그는 매일 밤 목성의 달들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것의 보고서가 바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이다.
나아가서 저는 많은 철학자들이 항상 논쟁해 온 것, 곧 은하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4개의 새로운 행성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붙박이별들과 달리 4개의 행성이 고유하면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도 관측했습니다. 이 행성들은 커다란 다른 별의 둘레를 돌고 있습니다. 금성과 수성처럼 말입니다. 이 움직임은 아마도 태양 둘레를 도는 다른 행성들의 움직임과 동일할 것입니다. -본문 중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본문 중 109쪽의 그림, 갈릴레오가 1610년 1월 19일에서 20일에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며 그린 기록
위대하고 경이로운 광경을 펼쳐 보이는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피렌체의 귀족이자 파도바대학교의 수학 교수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최근 몸소 제작한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들을 철학자와 천문학자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밝힌 책.
달의 표면, 무수히 많은 붙박이별들, 은하수, 성운으로 보이는 별들, 특히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가 얼마 전 갈릴레오가 최초로 발견하여 메디치 별이라 명명한 공전주기가 서로 다르면서 놀랍도록 주기가 짧은 목성 별 주위를 도는 4개의 행성에 대한 이야기.
-본문 중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표지 그림과 이에 대한 해석
◎ 인류 최초로 우주를 두 눈에 담은 사람,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래도 지구는 돈다’
무리한 망원경 관측으로 실명이 되기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564년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피사에서 태어났다.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갈릴레오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수학에 더 흥미를 가진 갈릴레오는 1581년 피사대학에 입학한 후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수학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583년에는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하여 맥박계에 응용하였으며 1585년에 피사대학을 중퇴한 뒤, 피렌체에서 수학 연구를 계속했다. 1589년에 피사대학의 수학 강사가 되었으며 후에 베네치아공화국(북이탈리아)의 파도바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그동안 축성술, 기계공작기술상의 여러 문제를 연구하다가 동력학의 연구로 진출했는데 이때 그 유명한 관성의 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1609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망원경을 개량했다. 그 배율을 높여 천체 관측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관측으로 달의 표면에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 금성이 달처럼 차고 이지러진다는 것, 태양에 흑점이 있어 태양면에서 운동하고 있다는 것, 희미한 은하수가 실은 많은 별들의 집단이라는 것, 목성 주의에 네 개의 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목성의 위성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그의 친구였던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에게 써 보냈다.
1610년에는 피렌체 공국 코시모 2세의 초청을 받아 궁정 소속의 수학자가 되었다. 이 무렵 그의 지동설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결과 1616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이 학설이 금지되어 갈릴레오의 활동이 중지되었다. 그 후 갈릴레오는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던 오르바누스 8세가 교황에 즉위하게 되자 다시 새 학설을 담은 책을 낼 것을 결심하고, 출판의 허가를 얻기 위해 직접 로마에 갔다. 그는 교황청 도서 검열계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가설로서만 서술한다면 출판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수년 동안 집필한 것을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세계관에 관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1632년에 출판했다. 그런데 이 저서에는 표면상 천동설을 지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지동설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천동설이 옳다는 자백을 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재판을 받았을 때 그는 이미 70세였다. 그는 종신 금고형을 선고 받고 나머지 생애는 엄중한 감시 하에 피렌체 교외의 자택에서 고독한 여생을 보냈다. 이 근신 중에 갈릴레오는 <두 개의 신과학에 관한 수학적 논증과 증명>을 써서 출판이 자유로웠던 네덜란드에서 1638년 출간했다. 그러나 그해 갈릴레오는 장기간의 무리한 망원경 관측이 원인이 되어 실명을 한다.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가 ‘진공의 연구’로 유명한 제자 토리 첼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1642년 세상을 떠났다. 이해에 뉴턴이 태어났다. 갈릴레오가 죽은 후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장례를 지내는 것도 묘비를 세우는 것도 금지했다.
1992년 10월 31일 로마교황청은 10여년 동안 특별재심과학위원회에서 1633년 6월 22일 종교재판에 대해 다시 검토한 결과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오의 완전 복권을 선언했다.
머리말
해설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고귀하신 토스카나의 네 번재 대공 코시모
드 메디치 2세 전하께
천문학 소식
맺음말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
연보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