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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510876 / 36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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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 근대 100년, 길들이기 그리고 편가르기를 넘어 한국 근대 100년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어떠한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역사 최전선》(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를 통해 조선인의 대외관과 친미 반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등 한국 근대 100년의 다양한 모습을 토론하던 박노자와 허동현이 논쟁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식인과 친일, 여성, 대중문화, 종교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두 저자의 논쟁에 담긴 한국 근대 100년의 여러 풍경들은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에 대... 한국 근대 100년, 길들이기 그리고 편가르기를 넘어 한국 근대 100년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어떠한가? 그리고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역사 최전선》(2003),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2005)를 통해 조선인의 대외관과 친미 반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와 전근대 등 한국 근대 100년의 다양한 모습을 토론하던 박노자와 허동현이 논쟁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식인과 친일, 여성, 대중문화, 종교 등 여러 방면에 걸친 두 저자의 논쟁에 담긴 한국 근대 100년의 여러 풍경들은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자 ‘내일의 어딘가’를 위한 진심어린 조언이다.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한국 근대 100년을 말한다》에서 주목하는 한국 근대 100년은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다. 박노자에게 한국 근대 100년은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길들이기’다. 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 여성에 대한 구조화된 차별 등 거시적 문제는 차치하고 미시적 영역을 들여다봐도 우리의 근대는 타자와의 연대를 잊어버린 공격과 경멸뿐이다. 근대국가 만들기와 선진국 따라잡기라는 최우선의 목표에 따라 근대 국민으로 길들여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소수자에 대한 무관심, 후진국에 대한 경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박노자의 날카로운 비판과 달리 허동현에게 한국 근대 100년의 자화상은 ‘편가르기’다. 지금 우리가 민족 지키기와 근대화 이룩하기라는 근대 과제, 그리고 타자?타민족과 더불어 살기나 양성평등 사회 실현하기와 같은 근대 이후 과제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보는 허동현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근대 100년의 모습은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편가르기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민족이냐 아니냐를 잣대로 너와 나를 구별하던 편가르기를 넘어설 때 좀 더 나은 내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보는가는 자신이 지닌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시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이다. 내 관점만이 옳다고 고집 부린다면 다양한 시각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소통’은 바로 이러한 태도, 자신만이 맞다는 아집과 교만을 버리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박노자와 허동현의 한국 근대 100년 논쟁은 이 같은 소통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 절대적 진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열린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두 저자의 논쟁에서 우리는 한국 근대 100년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 100년의 다양한 풍경들―지식인, 여성, 대중문화 그리고 종교 이광수, 두 얼굴의 지식인 근대로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식민지화. 일제 강점기는 봉건 사회를 넘어서는 근대의 출발점이었지만 일제의 식민지화 덕분에 일그러진 형상으로 기억된다. 이는 당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이중적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노자와 허동현은 이 같은 일그러진 근대의 형상을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 이광수를 통해 살펴본다. 박노자에게 이광수는 두 얼굴의 지식인이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애정 문제 탐구에 몰두하기도 하고 부처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을 애써 본받으려 하는 과민한 구도자의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힘과 살인과 “황인종의 단결”을 예찬하는 친일 파시즘의 특색이 강했던 국가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간디에 대한 예찬을 통해 톨스토이의 화두인 평화와 비폭력을 옹호한다. 그러나 “힘이 있는 자만이 자유와 개성을 논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사회진화론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신조로 삼기도 한다. 모순적인 이념과 사상의 혼재 그 자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박노자는 이러한 이광수의 두 얼굴이 민족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근본 단체’로 본 데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근대를 배우면서 독립적인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 개인의 생명과 자존 같은 부분을 거의 처음부터 제외시켰기 때문에, 다시 말해 ‘국가의 신화’를 끝내 해체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파시스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허동현은 이광수가 한 얼굴로는 종교적 사랑을 예찬하고 다른 얼굴로는 일그러진 근대를 찬양한 두 얼굴의 야누스적 존재이기보다는 ‘민족’이라는 실에 자신이 삶의 궤적에서 만난 다양한 사조라는 구슬들을 꿴 일관된 민족주의자라고 말한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가치는 국가주의 내지 민족주의였고, 기독교나 불교를 비롯한 여러 사상들은 민족과 국가에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취사선택됐던 종속적 가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민족개조론〉에서 민족을 최우선에 둔 것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 민족이 “비사회적이고 이기적이고 나태하고 겁이 많고 진실성이 없는, 아주 열등한 성격”때문에 식민화 당했지만 “중심인물과 개조 단체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개조 노력이 있으면 그 아름다운 근본적 성격이 회복되어 우등민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광기의 시대를 산 지식인의 아픔과 고뇌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우리의 근대 100년에서 무엇을 보여주는가. 허동현은 말한다. 자기만의 가치와 신념을 고집하고 자기와 지향을 달리하는 쪽을 배척하는 것은 증오와 폭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이는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태도가 아니라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 경험이라고. 이광수는 우리에게 이처럼 증오와 배척을 넘어선 관용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매춘 여성에서 신여성까지 한국 근대 100년을 논하면서 빠질 수 없는 존재로 ‘여성’이 있다. 신분의 예속에 얽매여 현모양처로 살아가기를 강제당해왔던 여성들. 이는 봉건 사회가 해체되기 시작한 일제 강점기에도 지속되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박노자는 이 같은 여성의 예속을 매춘 여성과 신여성을 통해 고발한다. 성인 여성 15명 중 적어도 1명 정도는 매춘을 하는 매매춘 공화국. 2004년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마지막 “현대형 노비”들은 일견 사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보자. 과연 그럴까? 여전히 현실은 암울하다. 집창촌의 해체는 성매매의 음성화를 불러왔다. 정부의 허울뿐인 ‘탈성매매 지원’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하층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매춘 여성을 다시 성매매의 사슬 속에 가둔다. 매춘 여성의 역사를 보면 이 같은 양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부에 의해 “외화 벌이의 주역”이자 “애국자”로 칭송받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양놈의 걸레”일 뿐이었던 그들 매춘 여성들은 결국 ‘우리’, ‘민족’의 테두리에 예속당한 존재였다.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근대화의 산 증인이 바로 이들 매춘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여성의 예속은 일제 강점기 신여성에게서도 엿보인다. 성리학과 메이지 일본과 기독교가 모든 여성들을 “정숙한 숙녀”와 “음탕한 요부”라는 두 범주로 나누고 심판하는 남성중심주의적·중산층 위주의 이분법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근대 여성의 표상으로 칭송받는 신여성조차 이 같은 강고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지 못했다. 반면 허동현은 매춘 여성과 신여성들의 주체적 성격에 좀 더 주목한다. 허동현의 눈에 비친 매춘 여성은 단순한 “성노예”,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 중심 사회의 구조적 산물이자 희생자가 아니다. 그러한 시각은 여권의 신화화를 통해 여권운동가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매춘 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나누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매춘 여성은 성 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길 꿈꾸고 있다. 마찬가지로 민족과 국가가 최우선 가치이던 한 세기 전 이 땅의 매춘
목차
들어가며|총체적, 다성적多聲的 역사를 위하여!
제1부 지식인과 친일
이광수가 지닌 두 개의 얼굴
사랑 예찬과 일그러진 근대 찬양|박노자
“민족을 위한 친일”, 처단에 앞서 정밀한 이해 필요|허동?현
〈민족개조론〉을 말한다
‘우리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지적 사기’|박노자
국민국가 만들기 프로젝트로서의 〈민족개조론〉|허동현
제2부 여성
매춘 여성의 어제와 오늘
기생과 매음녀, 그리고 페티시 클럽 여종업원|박노자
성노예인가 성노동자인가, 한 세기 전과 오늘 매춘 여성의 꿈|허동현
신여성의 꿈
개화기와 그 후의 신여성 또는 욕망의 정치|박노자
내 몸의 주권? 민족의 독립? 계급의 해방?|허동현
제3부 대중문화
한류韓流, 타자의 한국 보기
“서구의 한류”란 무엇인가|박노자
한류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허동현
식민지 시대의 영화
근대의 가시성可視性과 동원의 정치|박노자
‘해방의 무기’인가, ‘욕망을 파는 문화상품’인가|허동현
제4부 종교
무속과 기독교의 명암
무속 혹은 “마취제 판매 시장”에 대한 단상들|박노자
종교가 아편이면, 신도는 마약중독자?|허동현
한국 불교를 보는 두 개의 시선
한국 불교의 “부끄러운 역사”|박노자
시민의 눈으로 불교 역사 들여다보기|허동현
제5부 한국 근대 100년
한국 근대 100년을 말한다
지나간 100년?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 복지와 여성 문제|박노자
지난 한 세기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허동현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