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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타박네야

김상훈 저 | 보리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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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4285491 / 560쪽 143 x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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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이 책에는 여인네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시집살이 노래와 ‘길쌈 노래’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일 노래, 사랑과 이별 노래, ‘자장가’ ‘둥개야’ 같이 아이 달래는 노래, 아이들이 부모를 그리는 노래, 아이들끼리 놀면서 부르는 동요까지 418편을 담았다.

“못 할레라 못 할레라 시집살이 못 할레라”

이 책에 있는 노래를 부른 이들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손 마를 새 없이 일을 하며 식구들 건사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시집살이 삼년에 미나리 꽃처럼 하얗게 새어버린” 여인네도 있고, 중이 되어 떠나는가 하면 당차게 시집 식구들에게 대항하는 며느리도 있다. 어디서고 편히 말할 수 없었던 속내를 노래 속에 담아 불렀다.
“잠아 잠아 오지 마라” 아무리 빌어도 잠은 쏟아지고, 일거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졸다가 시어머니 눈에 나면 남편 눈에 절로 난다” 걱정하는 마음이 안타깝다가도 “제 눈에 오는 잠을 명주실로 묶어 한강에 흘리면 고기들도 자불거”란 말에 웃음이 배어난다.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아꼈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래를 만난다.

사라진 아이들 놀이, 노래로 남다

요즘은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도 듣기 힘들다. 지금은 사라진 아이들 놀이 노래가 담겨 있다.
아이들이 뛰놀며 지어 부른 노래라 노랫말이 쉽고 짧아 노랫말만 읽어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요”란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옛날에는 ‘가歌’와 ‘요謠’를 나누어 ‘가歌’는 음악과 함께 부르는 노래, ‘요謠’는 음악 없이 부르는 노래로 해석하였다. ‘가요’라는 말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곧 ‘가요’는 ‘노래’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우리 나라 가요에 대하여’(문예출판사 편집부)에서

남에서 반평생 북에서 반평생, 겨레의 시인 김상훈이 엮었다

김상훈은 1919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공부했으며,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도병이 되기를 거부해 졸업하면서 바로 원산철도공장으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했다. 병으로 돌아온 뒤 항일 활동을 하다가 1945년 1월에 붙잡혀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징역을 살았다.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왕성하게 시를 써 발표했다. 1946년에 김광현, 이병철, 박산운, 유진오 들과 《전위시인집》을 펴냈다. 한국 전쟁 때 종군 작가로 전선에 들어갔다가 북에 남았다. 북에서는 시를 쓰는 한편, 고전 문학을 오늘의 세대에게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1986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부터 내려온 민간의 노래를 정리해 ‘가요집’을 엮었고, 우리 역사의 한시들을 골라서 ‘한시집’을 엮었다. 아내 류희정과 이규보 작품집을 두 권으로 엮은 것이 2005년에 《동명왕의 노래》와 《조물주에게 묻노라》로 남에서 출간되었다.

김상훈이 세상을 떠난 뒤에 북에서 유고시집 《흙》을 출간하였다.
2003년에 김상훈의 시비가 그의 고향인 거창에 세워졌으며, 《김상훈 시전집》(박태일 엮음, 세종출판사)과 《김상훈 시 연구》(한정호 엮음, 세종출판사)가 나왔다.

저자 소개

  • 저자 : 김상훈
편자 : 김상훈
1919년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서 빈농이었던 김채완(金采琓)과 부인 안동 권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출생 직후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김채환(金采煥)과 부인 의성 김씨 슬하로 입양되었다. 거창의 지주였던 큰아버지 역시 종가를 지키기 위해 입양된 사람으로서 별다른 차별 대우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양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후 시인은 경제적 차이가 나는 두 집안을 보면서 내면적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학문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독선생을 모시고 어릴 때부터 한학을 익혔던 김상훈은 신동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문재가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신학문을 배우고 싶었던 김상훈은 아버지를 설득해 방과 후에도 한학을 계속 익힌다는 조건으로 뒤늦게 가조보통학교에 입학, 15세인 1933년에 졸업(4회)했다.

18세인 1936년에는 단식을 하면서까지 아버지와 대립한 끝에 서울의 중동중학교(5년제)에 입학해 영어 선생님이던 김광섭의 지도를 받고, 급우인 유진오와 함께 도서반원 활동을 하며 문학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아버지와 의견을 달리하던 김상훈은 이후 점차 아버지의 친일 지주적인 면과 강하게 대립하게 되는 한편, 반대로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21세가 되던 1939년 11월 27일 ≪조선일보≫에 처녀작 <석별>을, 12월에는 ≪학우구락부≫에 <초추(初秋)>를 연달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1941년에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 ‘만월’이라는 문학 서클(정준섭, 조세환, 서갑록 등 7명으로 구성)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임화 등과 교류했다. 학교를 조기 졸업한 뒤 1944년에 징용으로 원산의 철도 공장에 끌려가 선반공으로 일하게 된다. 징용 중에 걸린 맹장염으로 긴급 수술을 하게 된 김상훈은 친구인 시인 상민(常民)의 권유로 요양을 핑계 삼아 징용을 탈출해서 항일 무장 단체인 협동당 별동대에 가담해 발군산에 입산한다. 그러나 곧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구속 수감 중에 해방을 맞게 된다.

출옥 이후 김상훈은 조선학병동맹, 조선문학가동맹 등에 가입하면서 해방 공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11월 30일 ≪민중조선≫을 창간하고 발행인 겸 주간으로 일하면서 작품을 발표하고 ‘월요회’를 구성, 1946년에는 김광현, 박산운, 유진오, 이병철 등과 공동 시집 ≪전위 시인집≫(노농사)을 간행한다. 한 사람이 5편씩, 총 25편의 시를 수록한 이 시집에는 임화와 김기림이 서문을, 오장환이 발문을 썼는데 이를 통해 김상훈은 해방 공간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진 시인 중 한 명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른바 ‘전위 시인’으로 불리던 김상훈은 1947년 김광균의 글 <문학 평론의 빈곤>(≪서울신문≫, 3. 4)에 반박해 <빈곤의 논리>(≪독립신보≫, 3. 11)를 발표하고 이어 <시경에서 보는 계급 의식>(≪문학평론≫, 4. 19), <테러 문학론>(≪문학≫ 4호) 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의식을 보다 구체화한다. 5월에는 26편의 항쟁시를 포함한 시집 ≪대열≫(백우서림)을 발간하고, 강원도 지역을 순회하는 ‘문화 공작대’로도 활약한다. 이듬해 10월 서사시집 ≪가족≫(백우사)을 발간하고 번역 시집을 내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하다가, 끝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고초를 겪기도 한다.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이후에 좌익 세력 색출 과 통제, 회유를 위해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면서 전향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이후 다시 북한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입대하게 되고, 종군 작가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10월경 유엔군에 쫓겨 입북한 뒤 그대로 북한에 남는다.

북한에서는 ‘문예총’에 가입해 임화의 도움 아래 ≪문학전선≫ 편집인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남로당 계열 문인 숙청 때 김상훈 역시 추방되어 한때 사망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후 1962년에 ≪조선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북한에서 문단 활동을 재개했으며, ‘고전 문학 편찬 위원회’에 소속되어 고전 문학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하면서 이용악과 함께 악시가(樂詩歌) ≪풍요선집≫ 등을 간행했다. 다시 10여 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973년 ≪조선문학≫에 두 편의 시를 발표한 뒤에는 고전 번역 사업에만 종사하면서 후학 양성과 번역집 발간을 하던 끝에 1987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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