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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조선관 일본인 57인의 시선, 그 빛과 그림자

금병동 저 | 최혜주 역 | 논형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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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618740 / 332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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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금병동
저자 : 금병동
1927년 후쿠오카(福岡)에서 출생(본적은 경상북도 문경). 일본 조선대학교 교수 및 도서관 부관장을 역임하였다.
역자 : 최혜주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 동대학원을 졸업(문학석사)하였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졸업(문학박사)하였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최혜주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 동대학원을 졸업(문학석사)하였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졸업(문학박사)하였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책 속에서

신숙주의 일본관

신숙주가 일본에 간 것은 1443년으로 요시노리·요시가쓰 계승의 경조 통신사로서, 정사 변효문, 부사 윤인보가 파견되었을 때, 서장관으로서였다.
조선은 막부와 교린하면서도 규슈 단다이나 규슈·주고쿠 지방의 오우치씨 등의 유력자, 그리고 쓰시마의 소씨와 깊이 친분을 맺었다. 특히 소씨에게는 여러 통상상의 특권을 주어, 부분적으로는 소씨를 사이에 세우는 것을 제도화해서 통상교류를 통제했다. 한편으로는 국내의 방비체제를 정비하여, 왜구에 회유책을 가지고 임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세도 점차 수습되어 얼마 안 있어 무역상인 등으로 변질되어 갔다. 이렇게 왜구의 맹위는 감퇴했기 때문에 당연히 왜구 대책도 바뀌어 소씨의 특권도 점차로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1443년 조선과 쓰시마 사이에 체결된 계해약조도 그 일환이지만 신숙주 등은 같은 해에 일본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해동제국기』는 그 당시 간행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요직에 있던 신숙주가 영의정 겸 예조판서로 외교를 관장해 어린 왕을 보필하면서, 다년간의 경험을 살리고 쌓은 지식 전부를 기울여 일본과의 관계를 법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왕명으로 편수했다. 이는 방일 후 28년이 지난 1471년에 완성되었다. 해동제국이란 일본의 혼슈, 규슈, 이키, 쓰시마, 류큐국을 총칭한 것 같다. 요컨대 일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의 실정에서는 류큐만이 다른 나라였다. 이키·쓰시마를 크게 취급하는 것은 조선과의 특별한 관계에서였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는 일본의 여러 주·류큐의 지도, 일본국기, 류큐국기, 조빙응접기 등으로 나뉘어져, 국정, 지세, 교린의 연혁, 사자 응접의 방법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만 조선조 초기의 조·일 관계의 실체가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의 유력자·호족의 동정 등을 통해 이 시기 일본의 역사적 규명 면에서도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그 일본관도 당면의 현안 처리를 염두에 두면서도 역사적으로 파악하려는 자세로 일관되어 있고, 복잡한 상황을 잘 통찰하여, 관찰도 깊고 또한 예리하다.


최익현의 일본관

1875년 9월의 군함 운요호에 의한 강화도 사건의 도발과 이듬해 1876년의 구로다 기요다카, 이노우에 가오루, 정부 양 전권이 군함을 이끌고 한 문자 그대로의 포함외교는 군사적 위협을 배경으로 한 개항조약 체결 요구로, 조선의 조정과 민간은 그 시비를 둘러싸고 크게 들끓었다.
이 때, 최익현은 조약 반대운동의 선두에 서서 행동하고 있었다. 최익현은 이항로의 제자다. 스승 이항로는 위정척사파의 입장에서 서양 오랑캐 프랑스를 규탄했다. 최익현은 스승과 같은 입장에 서서 일본과의 조약에 반대하여, 대원군 실각 후의 민씨 정권과 대결한다.
그는 도끼를 지고서 조약을 반대하는 유자 50명을 이끌고 궁궐 앞에 엎드려, 상소문을 올렸다. 이 상소문이 유명한 「지부복궐척화의소」다. 부는 상소 주지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끼로 목을 쳐달라고 하는 의미다. 결국, 조선 봉건정부는 일본의 무력을 두려워하여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마지못해 개항에 응하고, 최익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이때의 상소문에는 최익현은 물론 전국 유림의 위정척사에서의 일본관이 응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목차

목차
1부 간혈적인 침략의 꿈
2부 실행되는 정한론, 선동하는 지식층
3부 무단통치와 일본의 우월의식
4부 더욱 교묘해진 지배
저자후기
역자후기
찾아보기-인명,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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