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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 평전 은둔과 변혁의 변증법적 실천가

신병주 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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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07353 / 296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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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다양성과 개방성이 꽃핀 시기로 16세기 조선 재발견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토정 이지함을 재조명한 평전 16세기 중·후반의 조선은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에서 발생한 사화士禍의 여파로 정치·사상적인 후유증이 컸던 시기다. 그동안 이 시기는 사림파의 집권으로 지방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자성리학이 정착된 때로 간주돼 성리학에만 집중해서 논의돼 왔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 경향은 당대의 개성적인 인물들을 주목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최근 들어 16세기 이후의 사상계를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이해하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 다양성과 개방성이 꽃핀 시기로 16세기 조선 재발견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토정 이지함을 재조명한 평전 16세기 중·후반의 조선은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에서 발생한 사화士禍의 여파로 정치·사상적인 후유증이 컸던 시기다. 그동안 이 시기는 사림파의 집권으로 지방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자성리학이 정착된 때로 간주돼 성리학에만 집중해서 논의돼 왔다. 하지만 그러한 연구 경향은 당대의 개성적인 인물들을 주목하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최근 들어 16세기 이후의 사상계를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이해하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 시기 사상계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로는 남명 조식과 화담 서경덕을 들 수 있는데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조선중기 사상계에 큰 흐름을 형성했다. 남명 조식과 그 학파에 대해서는 경상대 남명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지난 몇 년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 반면에 화담학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서경덕 이외에는 그 연구가 부진했다. 그 이유로는 화담학파의 핵심 인물인 토정 이지함(李之菡, 1517~1578)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왜 그럴까?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그 대중적 인지도는 누구보다 높은 이지함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신병주 건국대 교수(한국사)가 지난 10여 년간 천착해온 결과물로 내놓은 『이지함 평전』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고 반가운 선물이다. 저자는 이지함 사후에 편찬된 『토정유고』와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등을 기본 사료로 삼고 여기에 『대동야승』 『택당집』 『남명집』 『화담집』 『동유상우록』 『지봉유설』 『북학의』 『어우야담』 『해동이적』 『대동기문』 『동패락송』 등의 자료들을 더해 마치 퍼즐을 맞추어 나가듯 이지함의 삶의 파편들을 모아나갔다. 저자가 이지함 평전을 집필한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남명 조식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아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던 이지함의 삶과 사상을 제대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상업이나 수공업 해양자원의 적극적인 개발과 국제무역까지 주장한 그의 혁신적인 사회경제 사상은 조선후기 북학사상의 원류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었다”(p.13)고 저술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둘째, 이지함을 통해서 조선의 16세기 사상계의 성격을 재인식하고자 한다. 16세기는 주자성리학이 정착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학계가 성리학 일변도로 완전히 경색되기 이전, 그러니까 양명학이나 도교와 같은 사상전통이 널리 읽히면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추구한 시대였다. 저자는 16세기를 그 이후에 펼쳐진 실학사상의 전개와 맞물리는 역사적 톱니바퀴의 일부로 명확하게 규명해낸다. 저자는 당시 조선사회는 기존에 인식된 것보다 훨씬 다양한 학문과 사상이 공존했던 시대이며, 그 대표주자로 이지함을 내세웠다. 특히 國富의 증대와 민생에 유용한 것이라면 어떤 산업도 개발해야 한다는 신념과 유통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근대 경제학자들의 논리와도 유사성을 갖는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보다 앞선 시기에 적극적인 국부 증진책을 제시하고 실천한 선구적인 인물인 이지함을,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나아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경제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칭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토정비결」은 왜 이지함의 저술일 수 없는가? 민중 지향적인 학자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아야 이 평전에서 저자는 점술과 복서에 능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지는 특이한 인물로서 “기인 이지함”을 “16세기 조선 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완전히 재인식한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논란이 많은 『토정비결』 저자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 비결서가 이지함의 저작일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결론짓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토정비결』이 이지함 사후에 유행하지 않고 19세기 후반에 널리 퍼진 점 등을 고려해볼 이지함의 이름을 가탁假託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먼저 이지함 사후 100여 년 후인 숙종 때 그의 고손자 이정익이 토정의 유고를 모아 간행한 책이 『토정유고』이다. 당시에 『토종비결』이 유행했다면 반드시 이 유고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조 때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유득공柳得恭이 서울의 세시풍속에 대해 쓴 책 『경도잡지京都雜誌』에도 『토정비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만약 『토정비결』이 조선후기에도 유행했다면 『동국세시기』나 『경도잡지』에 결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토정비결』이 담아내고 있는 뜻을 보면 이지함의 사상과 통하는 측면이 많아 단순히 그 관계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 『토정비결』은 『주역』을 바탕으로 하여 상수학象數學의 사고를 많이 드러내는데, 이지함이 스승 서경덕에게서 상수학과 『주역』을 배웠던 점 등을 고려하면, 『주역』 사상에 내포된 변혁 의지가 『토정비결』에도 반영되어 변화를 갈망하는 백성들의 의식에 깊이 각인을 새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정비결』이 기본적으로 『주역』을 모태로 한 저술이라는 점은 이덕형이 이지함을 염두에 두고 “세상에서 풍수를 숭상하고 믿게 된 것은 이씨의 집안에서 시작된 것이다”고 말한 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민간에서 유포되던 비결秘訣이 그의 이름을 따서 정착한 것은 그가 그만큼 민중 지향적인 학자였음을 확인시켜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실학의 기원은 16세기로 당겨져야 한다 조선 후기 사회개혁론의 海上 기반 밝혀 이지함의 사상은 무엇보다 민간의 실상을 직접 목격한 것을 바탕으로 구축됐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유랑생활에 생애 대부분을 쏟은 그는, 백성들의 생활고를 직접 보고 겪고 들을 수 있었다. 이지함은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주민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생산기술을 가르쳤으며 자급자족의 능력을 기를 것을 강조했다. 주민들이 가난에 허덕이자 자기 소유물을 고르게 분배해주기도 했고, 무인도에 들어가 박을 심어 수만 개를 수확해 바가지를 만들어 곡물 수천 석과 교환하여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다. 『토정유고』의 「유사」나 『연려실기술』 등에 나오는 이런 기록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이지함의 행위는 적극적인 계획과 실천, 나아가 백성들의 광범위한 지지 없이는 이루기 힘든 일이다. 특히 한산 이씨 명문가의 후손임에도 피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서 직접 수공업이나 상업, 수산업에 종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지함의 이러한 학풍은 이수광을 비롯한 당대의 일부의 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나며, 김신국, 유몽인, 이산해 등 북인계 관료학자들은 이지함이 제시한 사회경제 사상과 유사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후대의 북학파 학자들에게서 그 이념과 합치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나며, 박제가는 16세기에 이미 해외 통상론까지 주장한 이지함의 탁견에 탄복했다고 한다. 이지함의 학풍과 사상의 특징은 개방성과 다양성에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나 노장 사상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에게서 나타나는 개방성은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사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상공업·어업·염업의 중시 등 유교적 말업관末業觀을 역전시키는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부의 증대와 민생 안정을 위해서라면 의義와 리利를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적극적인 자원 개발을 도모한 이지함의 사회경제 사상은 매우 진보적이고 유용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신분에 구애됨이 없이 민중들과 끊임없이 접촉하고 그 애로 사

저자 소개

  • 저자 : 신병주
신병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의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KBS의 「역사추리」, 「TV 조선왕조실록」, 「역사스페셜」, 「한국사 전」과 교육방송의 어린이 드라마 「점프」 등의 자문을 맡았다. 현재 KBS 「역사추적」 자문을 맡고 있으며,남명학 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외규장각도서 자문포럼 위원이다. 조선시대 지성사에서 한동안 소외되었던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의 연구과정에서 이지함을 주목하였고, 이지함을 통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 평전은 이러한 관심의 작은 결과물이다.
저서로는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 최고의 명저들』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조선 중·후기 지성사 연구』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등이 있고, 공저로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고전소설 속 역사 여행』 『제왕의 리더십』 『조선시대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이 있다. 연구논문으로는 「토정 이지함의 학풍과 사회경제사상」 「북인의 영수 정인홍의 사상과 현실 대응」 「조선시대 선비정신과 선비학자들의 활동」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의 계승에 관한 연구」 「광해군 시기 의궤 편찬과 그 성격」 「오대산본 조선왕조실록의 간행과 보관」 등이 있다.
최근에는 실록과 의궤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의 기록문화와 왕실문화, 그리고 조선시대 지성을 있게 한 선비문화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지함을 기점으로 하여 조광조, 이산해 등 개혁 성향을 지닌 인물에 대한 평전 집필을 구상하고 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4
서언_왜 이지함을 주목해야 하는가?
제1부 16세기 처사의 시대가 열리다
16세기, 이론 논쟁만의 시대인가? | 처사의 시대 | 조선왕조실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 최악의 필화 사건: 김종직의 「조의제문」과 무오사화 | 숨은 인재의 등용책, 유일遺逸
제2부 이지함의 삶과 『토정비결』
문명文名을 떨친 가문에서 나다 | 조선시대의 호랑이 | 역모로 처형된 장인, 이정랑 | 현감직을 두 번 맡다 |『토정비결』, 이지함의 저작인가? |『남사고비결』이란 무엇인가? |이지함이 기인으로 불리는 까닭은?
제3부 이지함, 그를 둘러싼 인물들
해안의 유랑자 | 이지함의 스승, 서경덕 | 과단성을 소유한 학자, 조식 |『석담일기』의 저자, 이이 | 북·서의 유일遺逸들 | 수정본 실록의 편찬
제4부 이지함의 문인들과 인재론
이지함의 문인 1: ‘이지함 맨’ 조헌 | 이지함의 문인 2: 천민 출신의 제자 서기 | 신분을 뛰어넘어 인재를 꿰뚫어보다 | 화담학파와 양명학
제5부 독보적인 학풍 형성과 논설
안명세의 옥사를 듣고 처사를 결심하다 | 경敬을 연구하여 실천을 독실히 하다 | 대인의 조건- 벼슬하지 않는 것보다 더 귀함이 없다 | 벗을 피하고 적은 욕심을 더 적게 하다 | 품기禀氣가 이러하니 어찌 선仙을 배운 것이 아니겠는가? |『주역』에 심취하다 |『해동전도록』 『해동이적』, 그리고 이지함 | 물아일체론의 소옹과 닮다 | 북인계와 뜻을 같이하다
제6부 현실을 꿰뚫고 비판하라
약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정국 | 이윤과 백이의 풍모를 갖추다
제7부 조선은 변혁되어야 한다
땅과 바다는 백 가지 재용財用의 창고다 | “나라가 있으면 기필코 그 안에 인재가 있습니다” | 남자는 대열에서 울고 여자는 감옥에서 웁니다 | 민民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불 지극해야 한다 | 근본으로 말업을 견제하고 말업으로 근본을 견제하다 | 우남명 좌퇴계 | 화폐 유통론자 김신국과 말업 중시 사상 | 북학 사상의 원조, 이지함 | 박제가와 『북학의』, 그리고 이지함
글을 마치며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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