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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5635813 / 392쪽 122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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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박영숙은 누구
1932년 평양 출생. 70대 중반을 훌쩍 넘긴 그녀는 오늘도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틀어 올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집을 나선다. 그가 애용하는 교통수단은 베엠베(Bus+Metro+Walking). 일산 끝자락 3층짜리 빌라단지 꼭대기층에 사는 그녀는 찬찬히 계단을 밟고 내려와 뚜벅뚜벅 걸어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일터로 약속 장소로 향한다. 그녀의 가방에는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미리 도착한 약속 장소에서 볼 일거리가 들어 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영국 유학을 단행한 평생 학습자인 그녀는 아는 것을 어김없이 살아내는 실천가다.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켜는 법이 없고, 숱한 손님을 치르고 남은 음식을 버리는 일도 없다. 요즘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는 도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익한 미생물(EM)과 지렁이 농법을 알리는 책을 십여 년도 전에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과 군부 독재 정권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여성계와 정치계에서 여성·소수자·환경 정책 수립과 입법에 힘을 쏟은 그녀는 우리 사회의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늘 서 있는 사회 원로다. 지난 6월 시청 앞 촛불 문화제 현장에서 박영숙을 만난 후배들은 그녀를 다시 거리에 불러낸 사회 현실이 어처구니없고 그녀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민망하면서도, 우리의 내일을 걱정하는 자리에 꼿꼿이 서 있는, 이 한결같은 선배가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생을 마칠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는, 은퇴를 모르는 사회 활동가 박영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흠모하던 후배들은 그녀의 말이, 그녀의 행동이 미처 기록되지 않은 우리의 역사인 것을 안다.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
책장을 펼치면 처음 만나는 30여 쪽 화보에는 우리 역사를 일구어 낸 사람들과 함께한 박영숙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고, 이어지는 본문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그녀의 삶을 보여 준다.
<공적인 삶을 꿈꾸다>(1932-1954)에서는 지금의 그녀를 형성한 바탕이 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은 부모님 덕에 여남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고, 일찍 죽은 남편을 대신해 가족 부양자로 나선 어머니의 삶을 보며 자기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결심한 소녀는 평양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여성들을 보며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삶을 꿈꾼다. 그녀 곁에는 어머니 외에도 친할머니와 작은아버지라는 든든한 후견인이 있었다. 대륙과 남북을 넘나들며 공부해야 했던 학창 시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생 멘토를 만나>(1955-1969)에서는 한국 여성 운동사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YWCA에서 멘토 박에스더를 만나 리더십을 배우며 여성 리더로 성장하는 모습, 국내외를 넘나들며 일찌감치 글로벌 감수성을 키워간 이야기며, 배우자이자 평생 멘토 안병무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이 펼쳐진다. <여성 운동 한복판에서>(1970-1986)는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이 겪는 어려움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시작한 생명문화창조운동, 구속자가족협의회 활동,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 집과 거리를 오가며 모의하고 한 목소리를 냈던 민주화 운동, 여성 운동, 환경 운동의 이력과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로운 도전>(1987-1991)에서는 정치인 박영숙의 삶이 보인다. 보수적인 정치 일선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소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외쳤던 열정적인 활동은 남녀고용평등법, 가족법 개정,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 백지화 등 양성 평등과 소수자 권익 증진, 환경 보존을 위한 실속 있는 결과물로 남아 있다.
<영원한 현역이고 싶다>(1992-)에는 정계에서 물러나 영국에서 하고 싶은 환경 분야 공부를 하고 NGO활동가로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담았다. 올 12월 그녀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 이제 자신을 재고용하는 인생 삼모작을 기획하는 그녀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영숙을 만나다>는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새로 쓰는 HERSTORY(허스토리), 여성의 역사다. 늘 새로운 상상력의 소유자, 아는 것은 실천하고 모르는 것은 집중해 공부하며 나이를 막론해 다른 사람의 충고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귀가 열려 있는 사람 덕에 고령화
사회의 미래는 밝다. 그녀가 먼저 걸어가지 않았으면 더 많은 짐을 지고 길을 내야 했으리라. 평생 활동가 박영숙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시대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퇴직 후의 현역을 꿈꾸는 실버 세대에게도 조용하지만 든든한 응원이 되어 줄 것이다. 그녀의 경쾌한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박영숙의 삶을 채록해 구성한 김현아는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전쟁과 여성>, <부자 엄마 부자 딸>을 썼고 시민 단체 '열린 네트워크 나와우리'를 설립해 사회 소수자의 인권 문제 및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풀기 위한 활동을 했다. 1993년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만나는 것, 열려 있는 공간에 들어가 어우러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관계성의 고유한 특징이며 우리가 지향하려는 사회를 여성적 관점에서 상상해야 하는 이유다.\"(박영숙)
그녀와의 인연은 카페 허스토리(http://cafe.naver.com/cafeherstory)에서 계속된다.
관습화된 삶의 방식을 깨트리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선택한 부모님 덕에 박영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차별을 겪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실 부모의 가치관은 아동의 경험으로 체화되어 마침내 그 사람의 삶을 규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딸들을 남자와 평등하게 대우했다는 것은 부모의 젠더 감수성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로, 이후 박영숙이 여성 리더로 성장하는 한 뿌리가 된다. - 50쪽
해방의 열기와 좌우익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진로 탐색을 함께해 주고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선배 여성은 흔치 않았다. 박에스더는 합리성과 진정성을 갖춘 드문 여성 리더로 당시 한국 여성들에게 멘토 역할을 다했다. 박영숙이 오늘의 여성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에스더의 멘토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79쪽
박영숙은 남대문 네거리에서, 대학 1학년이던 아들 재권은 서울역에서 각기 시위에 가담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명동성당에서는 800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농성 투쟁을 시작한다. 박영숙 역시 이 시위대와 함께 명동성당 농성에 참여한다. 6월 10일 밤부터 시작되어 15일까지 5박 6일 동안 진행된 명동성당 농성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희망이었다. 시민들은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전국에서 성금과 함께 빵, 음료수, 의약품 등이 답지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던 회사원들은 그 자리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남대문 시장 상인들도 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옷을 보냈다. 마침내 독재가 그 꼬리를 내려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195쪽
박영숙은 일반적으로 국회의원들이 도외시하는 소수자의 복지와 환경 또는 여성 관련 입법 활동에서 선구적이면서 두드러진 성과를 이루어 낸다. 법 제정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긴 과정을 거쳐서 개정 또는 제정된다. 그녀가 입법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말의 가부장적 그리고 개발 위주의 사회 분위기에서 소수자, 환경, 여성 관련 제도 마련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 244쪽
박영숙은 지금도 몽당연필을 볼펜대에 끼워 쓴다.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소품이지만 박영숙의 연필꽂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건 손녀가 쓰다가 만 몽당연필이다. 박영숙은 자신 소유의 자동차가 없다. 때때로 초면의 사람들이 뭘 타고 다니냐고 물어보면 베엠베(BMW)로 다닌다고 한다. 일산 집에서 마을버스(Bus)를 타고 나와서 지하철(Metro)로 갈아타고, 걸어서(Walking) 도착한다는 뜻이다. 2억 원짜리가 아니라 2천 원짜리 BMW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 271쪽
학창 시절 제대로 못한 공부를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처럼 몰입해서 공부하는 그녀를 보며 주위 동료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낯선 환경과 모국어도 아닌 텍스트들이 힘들 법도 하건만 케임브리지에서 보낸 시간은 박영숙에게 더없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왜 사람이 평생 학습자로 살아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순간이었다. - 28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