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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풀린 망아지 옥천에서 일내다 - 풀뿌리 언론의 희망 오한흥 희망을 여는 사람들 3

시리즈 : 희망을 여는 사람들 [3]

정지환 저 | 푸른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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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142230 / 230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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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상식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오한흥. 그는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므로…… ▶ 지역, 희망 그리고 묵직한 감동이 빚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 세 번째 오한흥, 그는 누구인가 ‘58년 개띠’로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인 이 창간되자 운명적으로 옥천 지국장을 맡았다. 길고 깊은 방황의 시절을 보내던 그는 당시 40여 명에 불과한 옥천의 독자들과 만나면서 ‘사회적 개안’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풀뿌리 언론의 성공 모델인 ... 상식과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오한흥. 그는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므로…… ▶ 지역, 희망 그리고 묵직한 감동이 빚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그 세 번째 오한흥, 그는 누구인가 ‘58년 개띠’로 충북 옥천군 옥천읍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인 이 창간되자 운명적으로 옥천 지국장을 맡았다. 길고 깊은 방황의 시절을 보내던 그는 당시 40여 명에 불과한 옥천의 독자들과 만나면서 ‘사회적 개안’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풀뿌리 언론의 성공 모델인 을 창간하고 키웠으며,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 옥천에서 절독운동을 성공시켰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창간을 주도했으며, 이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안터마을을 보다 건강한 생태마을로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 풀뿌리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불어닥친 민주화 열풍은 지역 차원에서 지방자치제(1991년) 실시와 풀뿌리 신문(1988년)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이때 오한흥은 충북 옥천에서 1987년 청년애향회 창립을 주도하여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석 달에 한 번씩 ‘애향회보’라는 소식지를 발행해 회원 동정, 지역 소식을 실어 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 바로 창간을 위한 일종의 준비운동인 셈이다. 그런 와중에 1988년 12월 충남 홍성에서 (의 전신) 창간되었고, 이에 자극을 받은 오한흥은 마침내 1989년 1월 30일 옥천지역신문 창간준비위원회를 꾸렸다. 정기간행물등록법상 필요한 자본금 5천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군민주(郡民株) 모금 방식을 도입했고, 이에 지역 주민 222명이 공동 출자에 참여했다. 당시 옥천은 YMCA나 농민회 조직조차 없었던 지역사회운동의 불모지였다. 이런 지역에서 신문을 발간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창간을 해도 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은 그런 시각을 보기 좋게 누르고 주민들에게 당당하게 인정받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은 기자실 출입이 봉쇄되자 한판 싸움을 벌여 마침내 출입 허가를 받았고, 군청에서 홍보예산으로 사용하는 비용 가운데 공식적인 보도 사례비로 기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촌지를 제공하는 등의 낡은 언론 관행과의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차근차근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 은 성역 없는 보도로 대외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고, 따라서 관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불가피한 전후 사정이 있다 해도 원칙을 어기거나 잘못을 했으면 독자에게 깨끗이 공개하고 사과하는 것이 의 전통으로 뿌리내렸다. 무모할 정도의 결벽성과 투명성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것은 외부의 정치적ㆍ경제적 압력으로부터 편집권의 독립을 지켜주는 든든한 원동력이 됐다. 왕도(王道)는 따로 없었다. 정도(正道)가 유일한 정답이었다. 은 언론의 정도를 걸었다. 성역 없는 과감한 보도로 지역 권력 핵심 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주민과 독자를 신문의 주인으로 섬겼다. 기본에 충실한 합리적 제도로 을 성공적으로 이끈 오한흥은 2005년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사퇴 의사를 밝히고 그의 후임으로 이안재 편집국장을 추천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경영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때를 기다린 것이다. ▶ 옥천을 언론개혁의 성지로 이끌다 1998년 에서 최장집 교수의 사상 검증을 대대적으로 벌이기 전까지만 해도 오한흥은 를 ‘민족지’로 알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10년 가까이 구독하고 있던 월간 에 실린 기사로 비로소 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오한흥은 의 전매특허인 ‘마녀 사냥’을 보면서‘반민족 범죄 행각을 은폐하기’ 위해 민족지로 행세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임을 간파했다. 지역신문을 발간하면서 상식과 원칙과 소통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던 그는 전정표 씨를 비롯해 김봉겸 ․ 조만희 옥천중 교사, 김성장 옥천상고 교사 등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언론개혁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가 자행한 반민족 친일 행각을 주민들에게 알려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으로 가꾼다’는 취지로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약칭은 ‘조선바보’다)’을 꾸렸다. 그 후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 8월 15일 정지용 시비 앞에서 출범식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조선일보로부터의 옥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들 회원들은 ‘독립군’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추방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 옥천군 군의원 전원(9명)을 비롯해,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지역 명사나 옥천경찰서 등의 단체가 독립군에 가입하는 눈부신 결과를 이끌어냈다. ‘물총닷컴’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하여 당시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었으며 의견 광고를 통한 오프라인과의 환상적인 연계로 절독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제 옥천은 바야흐로 ‘언론개혁의 고장’과 ‘안티조선의 성지’로 급부상했으며,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2003년 8월에 국내 최초의 언론 축제인‘언론문화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참언론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자’라는 주제로, 여섯 번째를 맞이한 올해‘언론문화제’는 다양한 볼거리와 놀거리가 함께 명실상부한 ‘언론개혁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지환
기획 : 희망제작소 www.makehope.org
희망제작소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희망을 찾는 시민참여형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생활과 제도를 바꾸는 ‘사회창안센터’, 우?리 사회의 새로운 대안 모델과 공익적인 삶의 가치를 찾는 ‘대안센터’, 공원․도시공간기획과 간판문화 등 도시의 공공 디자인을 연구하는 ‘공공문화센터’, 풀뿌리 주민자치와 지역 만들기를 통해 지역을 우리 사회의 중심으로 세워 가는 ‘뿌리센터’, 그리고 지역의 미래를 개척하고 이끌어 갈 우리 시대 공공 리더들의 성장학교 ‘희망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컨설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의 발전 모델과 대안정책을 제시하고, 기업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사회 공헌 활동을 제안하여 공익과 나눔의 가치를 더욱 넓히고 있습니다.
글 : 정지환
월간 , , 오마이뉴스 등 언론매체에서 15년 동안 기자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입법전문지 대표기자를 맡고 있다. 2000년 한국잡지협회가 주는 ‘올해의 기자상’을 받기도 한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에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다수의 논쟁적 기사를 남겼다. 1998년부터 조선일보 족벌사주 비리의혹을 추적하면서 ‘안티조선 전문기자’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지만, 정작 그가 애착을 갖고 천착한 화두는 사람, 풀뿌리, NGO, 현대사, 정책대안 등이었다. 󰡔대한민국 다큐멘터리󰡕, 󰡔남해군수 번지점프를 하다󰡕,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101인의 성공비결󰡕, 󰡔묵국현 죽이기󰡕 등의 저서가 있다.

책 속에서

광야를 불태우기 위해서는 단 한 점의 불씨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터에서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불씨만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그 어느 날 작은 바람이 불어도 한 점의 불씨가 광야를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 겁니다.”_40쪽

“언론을 일컬어 흔히 세상을 비추는 창(窓)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이 창을 통해서 소통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이 소통의 도구가 왜곡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청춘을 불행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부조리와 모순, 불합리한 괴리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때부터 나는 왜곡된 창, 즉 언론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 시대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_69쪽

“내가 <옥천신문>을 창간해 주민의 소통을 돕고, 안티조선의 시대적 흐름에 동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안티조선 운동을 하면서 나는 신명을 찾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내 자신이 존엄한 존재라는 것도 알았지요. 이제 더 이상 내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는 ‘청개구리’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_70쪽

왕도(王道)는 따로 없었다. 정도(正道)가 유일한 정답이었다. 실제로 <옥천신문>은 언론의 정도를 걸었다. 촌지와 계도지를 거부했고, 성역 없는 과감한 보도로 지역 권력 핵심 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그 무엇보다 먼저 주민과 독자를 신문의 주인으로 섬겼다. _134쪽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 세상의 실개천과 실핏줄과 실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내가 지금 안터로 돌아온 이유도 이런 실뿌리 정신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 속에도 우주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내 가정과 마을을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 세상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지요.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정 기자, 행복하십니까?”_230쪽

목차

목차
책을 펴내며
글쓴이의 말
1. 준비된 희망의 불씨
조아세? 조아세!/ 안티조선의 산실 안터마을/ 사람들의 숨결이 가득한 집/ 희망의 불씨를 지피며
2. 일탈과 방황의 시절
행복하십니까?/ 그의 과거를 알고?나 있습니까?/ 옳지만 하지는 마라?/ 자유인이기를 갈망한 이단아/ 더 이상 불행하게 살지는 않겠다
3. 새로운 도전,〈옥천신문〉
주말 여론을 이끌다/ 황금미꾸라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가슴속에 새긴 222명의 이름/ 낮은 곳에서부터 소통하다/ 낡은 언론 관행과의 싸움/ 주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4. 풀뿌리 언론의 희망,〈옥천신문〉
지역 권력 감시자로 나서다/ 도깨비 같은 〈옥천신문〉/ 줄기차고 집요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등잔 밑을 밝히다/ 성공의 핵심 비결은 바로 고객 감동/ 26원 31전의 기적/〈옥천신문〉을 떠나다
5. 언론개혁의 기치, 옥천전투
새로운 형태의 언론개혁운동이 태동하다/ 조선바보의 독립군/ 민들레 홀씨가 되어/ 옥천의 불씨가 가히 조선 들판을 사르리라/ 새로운 대안언론〈여의도통신〉/ ‘한국판 롤콜’을 꿈꾸다/ 풀뿌리 옥천당의 정치 실험
6.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안터마을을 찾는 사람들/ 꽃두레마을 추진위원회 결성/ 아깨다 마을 만들기/ 다시 풀뿌리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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