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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1510746 / 463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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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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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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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일제 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차미리사 평전이 출간되었다. 차미리사는 일제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한 여성독립운동가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1905~1910년까지 한인교육기관인 대동교육회, 대동보국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동신문 발간에 기여했고, 귀국하여 배화학교 사감으로 3.1 운동을 겪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0년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순회강연을 통한 민족의 실력양성을 역설했고 1923년 근화학원을 설립해 민족교육과 무궁화사랑운동을 전개했으며, 1940년 조선총독부의 압력에 의해 덕성여자 실업학교 교장식에서 물러났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차미리사의 잊혀진 생애를 복원하다 ‘실용’에 묻혀버린 과거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천명한 이후, ‘실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표준이 되어 사회 전반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과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든든한 이념적 후원자인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출현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재’로 보고 그 출현의 토대를 ‘과거’의 실용에서 찾는다. 나아가 이 과거의 실용에 일제 강점기의 순응과 타협, 다시 말해 친일 행위까지 포함시켜... 차미리사의 잊혀진 생애를 복원하다 ‘실용’에 묻혀버린 과거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를 청산하고 ‘실용의 시대’로 나가겠다고 천명한 이후, ‘실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표준이 되어 사회 전반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다. 과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든든한 이념적 후원자인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출현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재’로 보고 그 출현의 토대를 ‘과거’의 실용에서 찾는다. 나아가 이 과거의 실용에 일제 강점기의 순응과 타협, 다시 말해 친일 행위까지 포함시켜 일정부분 정당화한다. 저자는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친일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이러한 움직임이 민족의 독립을 삶의 제1원칙으로 삼아 한평생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정신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일제의 폭력에 식민지 조선인이 정면으로 대항하기는 어려웠으며 어쩔 수 없이 굴종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의 전시공업화 정책으로 일자리가 늘어나 황국식민지 교육을 받은 한국의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었다는 등의 서술이 친일을 당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처신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인식에서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은 설 자리가 없다. 그저 잊힐 뿐이다. 그러나 각종 억압과 차별, 폭력과 권위에 맞서는 힘, 그리하여 세상을 좀 더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드는 힘은 망각되어서는 안 되는 그러한 독립운동가의 삶에서 비롯된다. 여기 망각의 저편에 머물러 있는 독립운동가가 한 명 있다. 일제 강점기 여성해방과 조국독립을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녔던 차미리사車美理士(1879~1955)가 바로 그다. 망각의 저편에서 되살린 독립운동가 차미리사 2002년 정부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차미리사의 공적을 기려 그를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족장)로 서훈했다. (차미리사는) 일제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항일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한 여성독립운동가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1905~1910년까지 한인교육기관인 대동교육회?대동보국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대동신문 발간에 기여하였고, 귀국하여 배화학교 사감으로 3?1운동을 겪으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0년 조선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순회강연을 통한 민족의 실력 양성을 역설하였고, 1923년 근화학원을 설립해 민족교육과 무궁화사랑운동을 전개했으며, 1940년 조선총독부의 압력에 의해 덕성여자실업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났다. 《차미리사 평전?일제 강점기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는 일제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순응과 타협이라는 ‘불가피한 선택’을 거부한 차미리사의 꼿꼿한 삶을 담담하게, 그러나 세세하게 보여준다. 한평생을 가난하고 못 배운 조선의 여성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온전한 독립을 염원했던 차미리사의 고매한 의지를 망각의 저편에서 기억의 이편으로 이끌어낸다. 친일이냐 독립운동이냐가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현 시점에서 이 같은 차미리사의 올곧은 삶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참모습을 되살림으로써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유용한 답을 제시한다. 차미리사는 누구인가 소박떼기 하나라도 더 끌어다 가르치겠다 차미리사는 사회운동가였다. 조혼, 남편과의 사별, 상동교회 출입 등을 통해 조선 여성의 비참한 처지에 눈뜨게 된 그는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깨우쳐 조국의 운명과 조선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오른 중국과 미국 유학길. 지독한 열병 덕분에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는 등의 숫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차미리사는 하와이에서 무작정 이주하는 한인들을 위해 직업 알선, 숙소 제공, 전도 활동에 매진한다. 명실공히 재미 한인사회의 첫 여성 사회복지가 겸 전도부인이 된 것이다. 또한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들이 안정된 가정생활을 할 수 있게 돕기 위해 한국부인회를 창립,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본국에 고아원을 설립하는 운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어려움에 처한 동포를 외면하지 않는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외국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고국에 돌아와서 여러 동지들과 손을 잡고 직접으로 사회의 일도 하며 청년 여성을 교육시켜서 우리의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귀국하여 시간을 쪼개 가며 낮에는 배화학당 교사로, 밤에는 가정부인들을 위한 야학교사로 활동한다. 이러한 야학 활동에 배화학당 선교사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차미리사는 말한다. 당신들은 미국에서 선교사라는 사명을 받고 왔지만 나는 미국 선교부에서 병든 몸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조선에 가서 일을 하라, 삼천만 명의 여성과 같이 울고 같이 먹으며 살려고 우리나라에 왔오. 그래서 소박떼기 하나라도 더 끌어다 가르치려고 왔오. 자신의 일신 영달이 아닌 조국과 동포를 먼저 생각함으로써 개인의 영혼 구원에 제1의 목적을 둔 개인복음주의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을 하늘나라로 만들자’는 사회복음주의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차미리사는 여성운동가였다. 차미리사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섭섭이’라 불렸던 데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못났어도 아들 잘났어도 딸’이라는 남존여비사상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대표적인 풍조였다. 차미리사는 이러한 풍조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다. 그는 여성들이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 걸맞은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인격적 자각이 필요하다는 신념하에 일생을 노예적 삶에서 신음하는 일천만 조선 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기 위해 조선여자교육회를 창립한다. 그리고 깊은 단잠에 빠진 일반 여성들을 향해 “여자도 배워야 산다! 장옷을 벗고 긴 치마를 짤라 버리고 첩첩이 닫힌 속에서 뛰쳐나오너라!”라고 부르짖는다. 나아가 학생들이 자기 삶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창의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친다. 이러한 주체성, 창의성 강조는 근화여학교 교훈에 집약되어 있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삶의 주체성과 자율성, 사고의 독자성과 창의성, 지식의 실천성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권리신장과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바쳤던 것이다. 눈 뜨고 귀 열려서 나갈 때가 제일 기쁘다 차미리사는 교육운동가였다. 여자도 사람인 이상 배워야 산다고 생각한 그는 여성이 인격적으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성처럼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조선 사람들에게는 “고등교육보다는 보통교육이 더 필요하다”며 보통교육론을 주창한다. 이는 시집살이에 쪼들리는 이들, 무식하다고 남편에게 구박받는 이들, 남편에게 소박맞은 이들, 교육받지 못한 설움에 울면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 등 문맹 상태에 있는 대다수의 여성들을 위한 교육론이었다. 이와 함께 “이론교육보다 실천교육이 중요하다”며 실업교육론을 강조한다. 이 또한 가정에서는 차별대우를 받고 사회에서는 소외당하는 여성들의 설움을 풀어주려는 목적에서 주창된다. 차미리사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현실이 여성으로 하여금 굴욕적, 노예적 처지에 있게 만든다는 판단하에 실생활에 이용될 만한 기술교육에 매진한다. 밤과 낮으로 산간을 헤매어가면서 실현의 방법으로 짜내고 있는 나의 포부는 조선의 전문학교나 대학교를 설립하여 학사 박사를 양성하자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안방구석에서 남자의 노리개 노릇할 소위 현모양처를 기르고자 함도 아니라. 실지로 생활상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여
목차
책을 내며 | 오래된 약속
1 쓰개치마를 벗어버리고 더 넓은 세상으로
여자로 태어나 ‘섭섭이’로 불리다|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다|쓰개치마를 쓰고 예배당에 나가다|‘미리사’로 다시 태어나다|쓰개치마를 벗고 중국을 향하여|황금의 나라,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재미 한인사회의 첫 사회복지가가 되다|자선사업으로 여성 사회를 활성화시키다|“나라를 위하여 피 흘리는 것은 백성 된 의무다”|다시 그리운 조국으로
2 일천만 조선 여성이여 오라, 다 내게로 오라
우리는 죽더라도 독립을 해야 한다|배우자! 새로운 지식을 배우자|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획득하자|여자의 해방이라 함은 곧 인격의 해방이라|조선 여성의 교육은 조선 여성의 손으로!|나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사람을 인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꽃 같은 처녀의 불같은 혀|개조, 개조하라!|눈 뜨고 귀 열려서 나갈 때가 제일 기쁘다|폭풍과 파란을 헤치고 한줄기 빛이 되다
3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는 만 리 대장정을 떠나다
백두에서 한라, 그리고 서해에서 동해까지|예배당이 강연장소로 되었다|결혼은 아내, 사랑은 첩|물을 들여 입어라 다듬이질을 멈추어라|얼굴을 내놓고 좀 다녀봅시다|충성과 정직으로 서로 사랑하라|수레는 외바퀴로 구르지 못한다|조선문화사상의 제일 기록이 되다
4 조선 사람의 뜨거운 사랑과 땀과 피의 결정, 근화
청진동 가옥에 핀 무궁화|암탉이 알을 품듯, 조선 여성을 품다|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보통교육을 받고 빵을 구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조선의 딸들과 같이 울다가 세상을 떠나겠습니다|실제적으로 실업지식을 넣어 주려는 것이 저에게 둘도 없는 큰 계획입니다|자아를 잃은 곳에 무슨 참된 아내가 있으며 진실한 어머니가 있겠습니까|현재 조선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기술교육입니다
5 한순간도 조선 민족을 잊은 적이 없다
만경창파 성난 물결을 일엽편주로 건너듯|물밀듯하는 구경꾼|혹한에 핀 천자만홍|실로 민족의 딸임을 잊지 말라|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지 못하니 교장 될 자격이 없다|온전한 독립을 못 보고 죽는 것이 한이로다|글을 마치며
주석
참고문헌
부록1 차미리사 연보
부록2 차미리사 관련 글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