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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조선 한시사의 탐색

김용태 저 | 돌베개 | 200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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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3088 / 343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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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19세기의 시인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조선 시단의 면모와 조선시풍의 계승 양상 등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19세기에 일어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소재로 지은 옥수의 작품 「서사잡절」전후편을 소개하여, 근대 개항 전후 조선의 긴박했던 상황을 문학 작품으로 보여준다. 옥수 조면호는 19세기 서울 북촌(北村) 시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이 책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 시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옥수의 회인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추사 김정희와 옥수 조면호의 특별한 사제 관계를 소개하고 있는데, 옥수의 글을 통해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세계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조선의 풍경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19세기의 시인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조선 시단의 면모와 조선시풍의 계승 양상 등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19세기에 일어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소재로 지은 옥수의 작품 「서사잡절」전후편을 소개하여, 근대 개항 전후 조선의 긴박했던 상황을 문학 작품으로 보여준다. 옥수 조면호는 19세기 서울 북촌(北村) 시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이 책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 시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옥수의 회인시 작품을 소개하... 이 책은 19세기의 시인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통해 19세기 조선 시단의 면모와 조선시풍의 계승 양상 등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19세기에 일어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소재로 지은 옥수의 작품 「서사잡절」전후편을 소개하여, 근대 개항 전후 조선의 긴박했던 상황을 문학 작품으로 보여준다. 옥수 조면호는 19세기 서울 북촌(北村) 시단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인물이었다. 이 책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19세기 시인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옥수의 회인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추사 김정희와 옥수 조면호의 특별한 사제 관계를 소개하고 있는데, 옥수의 글을 통해 추사 김정희의 작품 세계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조선의 풍경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19세기 서울 북촌시사의 주인, 옥수 조면호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는 19세기 조선 한시사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추사 김정희의 애제자였으며,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막역한 벗이었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문학적 후원자였다. 명문 양반들이 거주했던 서울의 북촌(北村)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조면호는 사승(師承)과 교유(交遊)를 통해 18세기 실학파 문학의 성과를 온전히 계승하는 한편, 당대의 쟁쟁한 문사들이 참여했던 ‘북촌시사’(北村詩社)를 열성적으로 이끌었다. 오늘날 소수의 전공 학자를 제외한다면 옥수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문집인 『옥수집』에 담긴 무려 5천 편이 넘는 주옥같은 한시들은 그가 19세기의 걸출한 시인이었음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옥수는 18세기 실학파의 ‘조선시풍’(朝鮮詩風)을 계승하여 ‘19세기의 조선시풍’으로 발전시켜 나간 시인이었다. 탈권위적 시선으로 일상의 주변을 따스하게 노래한 작품들에서부터,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발휘하여 당시 양반 사대부의 무능을 풍자한 작품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같은 역사적 대사건들을 정면으로 형상화한 거작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를 두루 읽어 보면, 누구든 그가 19세기 한시사의 높은 봉우리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 조선의 어떤 시인도 옥수만큼 풍부하고도 심각한 시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수와 그의 시 세계는 오랜 세월 고서 더미에 묻혀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던 것인가. 아마도 이는 19세기의 우리 역사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 편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근대 사회로 연착륙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던 모든 책임을 19세기의 역사에 전가해 온 사상적 풍토에서는 그 시대에 대한 자유롭고도 진지한 탐색이 허용되기 어려웠던 탓이다. 옥수의 존재가 21세기에 ‘재발견’되기까지, 우리 사회는 19세기 조선의 역사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얻기 위해 10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9세기 한시사의 높은 봉우리, 옥수 조면호 19세기 서울 북촌(北村)에서 벌어졌던 시회(詩會)에 대하여 홍기문(洪起文)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철종 말년 또는 고종 초년에 이르러 서울 북촌에는 번창한 두 사랑이 있었으니 하나는 옥수 조면호요, 다른 하나는 환재 박규수다. 당시 서울에는 다양한 시사(詩社)들이 활발히 활동했는데, 크게 나누어 북촌의 북사(北社)와 남산(南山)의 남사(南社), 그리고 낙산(駱山)의 동사(東社)가 있었다. 북사라는 말은 북촌에서 벌어지는 여러 시사들을 두루 일컫는 말인데, 『옥수집』에 보이는 백련사(白蓮社), 금천시사(琴泉詩社), 송단시사(松壇詩社; 玉垂詩社), 죽림사(竹林社), 계사(溪社), 매화사(梅花社), 자하시사(紫霞詩社), 향사(香社), 간사(諫社) 등을 모두 ‘북사’라 할 수 있다. 옥수는 시사(詩社) 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으며, 어윤중(魚允中), 김옥균(金玉均), 김택영(金澤榮), 신기선(申箕善), 유길준(兪吉濬), 김윤식(金允植) 등의 후배 문인들도 옥수를 찾아 함께 수창했다. 『옥수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 당시의 풍성했던 한시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18세기 한국한문학사가 이룩한 성과가 19세기에 어떻게 계승되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 추사 김정희가 사랑한 제자 옥수는 추사 김정희를 종유하며 그에게 서예 수업을 받고, 고동서화에 대한 감식안을 길렀다. 그리고 이상적(李尙?), 허유(許維; 후일 허련으로 개명), 강위(姜瑋) 등 추사의 제자들과도 교분을 나누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도 다수 창작했다. 옥수의 작품을 통해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추사와 그 제자들에 관한 일화들을 볼 수 있으며, 옥수와 추사 사이에 오간 편지글들을 통해 두 사람의 특별한 사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추사는 옥수에게 엄격한 가르침을 내리는 한편, 또한 그를 매우 사랑하여 수많은 글씨와 그림, 고동을 주었다. 옥수에게 준 추사의 작품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본문 43면 도판 참조). 시인의 눈에 비친 근대 조선의 풍경 옥수의 시문학은 18세기 실학파 문학을 온전히 계승했다는 문학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옥수는 사詞 양식까지도 활용한 다양한 시체(詩體)를 통해, 자신의 내밀한 정서에서부터 ‘양요’(洋擾)와 같은 역사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대상을 시화(詩化)했는데, 「서사잡절」 전후편 이외에도, 경향 각지의 풍정을 노래한 기속시(紀俗詩), 당대의 쟁쟁했던 시인들을 기록한 회인시(懷人詩), 또 소품문 같은 감수성을 담고 있는 생활시 등등 우리 문학사에서 소중히 기억해야 할 작품들을 풍성하게 창작했다. ▶ 옥수의 작품 속에서 재발견되는 19세기 조선의 시인들 조선 후기에는 장편 연작 한시가 다채롭게 발전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4구 또는 6구의 시 한 수에 그리운 사람 한 명씩을 노래하여 연작시로 만드는 ‘회인시’(懷人詩)란 양식이 유행했다. 옥수는 회인시를 통해, 19세기에 활약했던 조선의 시인들을 노래했는데, 「감시절구」(感詩絶句)와 「회인절구」(懷人絶句)가 그 대표작으로, 각각 56명, 26명을 대상으로 한 장편시이다. 옥수에게 회인시가 갖는 의미는 오늘날의 기념앨범과 같은 것이었다. 동인들과 시문을 수창하던 즐거운 추억을 4구의 짧은 시 속에 용해해 내면서 아마도 그는 무한한 감회에 젖어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수마다 자세한 주석을 달아, 한 시대의 문단을 갈무리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옥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는 무려 340명이 넘는데, 이 책의 제목을 ‘19세기 조선 한시사의 탐색’이라고 붙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옥수의 작품에는 당대에 활약했던 양반 문사들부터 중인 서얼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문재(文才)가 있는 이들이라면 고루 등장하고 있다. 옥수가 남긴 글들을 통해 당시 문단의 모습과 활약했던 시인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탐색해 볼 수 있다. 옥수의 회인시는 오늘날 19세기 한시사의 면모를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이다. ▶ 시(詩)로 노래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옥수가 살았던 19세기는 서세(西勢)의 침투가 본격화되며 조선의 안위를 위협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던 시기였다.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옥수는 사(士)로서의 우국정신에 충만하여 자신의 견문과 소회를 담은 우국시들을 창작했

저자 소개

  • 저자 : 김용태
저자 김용태(金龍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현재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19세기의 한문학을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옥수 조면호 한시 연구」, 「옥수 조면호를 통해 본 추사 김정희」, 「이시원의 사의식과 이용후생의 논리」, 「옥수 조면호의 유희적 시정신」, 「임오군란기 한중문인의 교유양상」, 「이건창의 이탁오찬에 대하여」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서론
1. 북촌시사의 주인이 되기까지
벼슬길의 좌절, 시인의 탄생 / 추사 김정희가 사랑한 제자 / 서울 북촌시사를 이끌다
2. 시 정신의 형성과 그 지향점
소동파를 만나다 / ‘나의 시’를 찾아?
3. 문사의 일상과 멋
가난한 일상의 노래 / 청빈 속의 멋 ― 매화와 돌
4. 그리운 시인들의 추억
시로 그린 시인들의 초상 / 회인시체의 다양한 변주
5. 경향 각지 풍정의 기록
궁궐 풍속과 경복궁 중건 / 개항기 서울의 세태 / 향촌과 변방의 풍정
6. 서구 열강에 대한 항전의 의지
병인양요와 「서사잡절」 / 신미양요와 「후서사잡절」 / 개항 전후의 현실 인식
7. 표현과 형식상의 특색
해학과 풍자의 미학 / 새로운 시어의 창출 / 다양한 양식의 활용
19세기의 조선시풍, 옥수 조면호의 시 세계
― 결론을 대신하여
옥수 조면호 연보
참고문헌
본문에 수록된 옥수 조면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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