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 정가
- $30.00
- 판매가
-
$16.50
(45%↓)
- 적립금
- $0.33 (2%P)
품절된 상품입니다.
이 책을 꼭 원하시는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문의"를 클릭 후 구매의사를
알려주세요. 책이 확보 될 경우 연락 드리겠습니다.
평점 - · 리뷰 0
ISBN : 9788991510654 / 343쪽 153 x 22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유시민
-
김도형(별별역사)
-
김성대
-
스네자나 로렌스
- 17,010
- 16,920
- 26,010
- 24,300
반디앤루니스 리뷰
농암 이현보 선생의 17대 종손이 들려주는 '종택'과 '선비' 이야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안동, 선비를 말하다 안동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 3월 1일, 안동 시민 500명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안동 시내를 가로지르며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기념일 행사로 흔히 볼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만세운동은 그러나 ‘안동’에서 행해졌다는 점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왜 그러한가? 안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한국정신문화 수도’라는 글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경북 북부 유교 문화권의 핵심 지역, 퇴계 학맥의 정통을 계승한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안동, 선비를 말하다 안동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 3월 1일, 안동 시민 500명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안동 시내를 가로지르며 3?1절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기념일 행사로 흔히 볼 수 있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만세운동은 그러나 ‘안동’에서 행해졌다는 점 때문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왜 그러한가? 안동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한국정신문화 수도’라는 글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경북 북부 유교 문화권의 핵심 지역, 퇴계 학맥의 정통을 계승한 선비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교 문화의 보고, 육사 이원록과 석주 이상룡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와 자결순국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요람. 여기에 이러한 선현들의 흔적을 체현하고자 노력하는 안동 사람들의 전통 사랑이 함께 어우러져 안동을 ‘안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선비 정신은 이 같은 안동만의 특별함의 핵심이다. 그 옛날 사라진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존재하는 이름으로서 선비의 혼이 안동 산천 곳곳에 고스란히 녹아 700여 명의 독립유공자의 넋으로 이어진 것이다. 농암 17대 종손이 들려주는 안동 선비의 향취 저자 이성원은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이다. 종손이란 조상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의 수호를 전담하며, 제사를 주관하고, 손님을 맞는 접빈의 일까지 책임져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책무 수행이 강제된 종손의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성거리고 방황한다. 하지만 안동 곳곳에 배인 선비의 향취에 취해 어느덧 유가의 때를 묻히고 유가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무엇이 저자의 방황을 끝마치게 했는가? 선비 정신이다. ‘부끄럽지 않게 살기’와 ‘훌륭한 사람 되기’를 핵심으로 하는 안동 선비의 특유한 정신이 저자를 유가적 전통을 지키며 살도록 만든 것이다.《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농암 17대 종손이 들려주는 종택 이야기》는 그러한 삶의 흔적이다. 고향 안동에 터를 잡고 유유자적 산천을 거닐며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선비의 향취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 저자의 노력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 여정을 따라 선비의 숨결을 같이 느껴보자. 종택, 선비의 얼굴 안동 문화는 종택 문화다 훌륭한 인물을 기리고 그 인물을 본받고자 하는 염원에서 비롯된 종택은 가문 탄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자손 모두의 의지와 문화의 중심체다. 훌륭한 조상을 모신 위패, 그 위패를 지키는 직계 후손인 종손과 종부, 종손과 종부를 밖에서 돕는 지손으로 구성되는 종택은 훌륭한 인물 모시기, 훌륭한 인물 따라가기, 훌륭한 인물 되기라는 후손들의 바람의 구현이다. 안동에는 이러한 종택이 유독 많다. 퇴계와 쌍벽을 이루던 남명 조식이나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의 종손과 종택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안동에는 퇴계 종택을 비롯, 82개 소의 추모 공간과 96명의 불천위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처럼 안동에 유달리 많은 종택이 존재하는 이유로 중시조中始祖 제도[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면 그 분으로부터 가문의 역사를 시작하는 제도]를 언급하며 그것을 ‘훌륭한 사람 되기’라는 안동 특유의 사유 체계와 연결시킨다. 훌륭한 인물이 어떤 인물일까? 이에 대해 나는 한말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곧 안동 사람들의 변별성이고, 그 변별성의 중심에 종택이 존재하고 있다. ‘종택’이 바로 안동이다. 종택을 중심으로 한 각 문중들의 일상이 곧 안동 문화의 근간이다. 안동에서 종택을 떠나 존재하는 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 지금 안동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종류의 전통의례는 ‘왜 안동이 안동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거기에는 ‘훌륭한 사람 되기’와 ‘부끄럽지 않게 살기’가 그 내적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런 사유 체계의 현장에 안동 사람들이 있고, 이를 견인하는 중심에 안동의 종택들이 있다. 안동 문화는 결국 종택들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축적된 각 가문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훌륭한 인물의 출현이 종택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문중들 간 훌륭한 조상을 본받고자 하는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지는 안동 특유의 모습이 안동을 ‘안동’으로 자리 매김하는 문화의 역동성이라는 것이다. ‘안동 문화는 곧 종택 문화’라는 저자의 말이 염두에 둔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이다. 종택, 선비들의 다채로운 자화상 불천위 조상이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종택의 현재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금의 종택이, 그 종택에 살고 있는 후손이 어떤 모습이며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보면 불천위 조상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요컨대 종택은 조상과 그 후손의 거울이다. 퇴계가 도산서당을 지은 것과 거의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강학의 문을 열고 나름의 학문 세계를 펼치며 자기 빛깔의 생애를 살았던 유일재 김언기金彦璣(1520∼1588)의 종택에서는 한평생 남을 위한 삶을 실천한 현 유일재 종부 이후웅 여사의 고집스러움을 볼 수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건 계산도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길의 인생을 가려던 유일재의 꼿꼿함이 반세기의 시간을 가로질러 김후웅 여사에게로 이어진 것이다. 후조당 김부필金富弼(1577∼1644) 종택에서는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선비의 고매함과 만날 수 있다. 절개가 굳고, 벼슬이 내려와도 즐거워하지 않으며, 눈속의 매화 향기를 맡으며 좌정하고 앉아 자기 정진을 하는 인물이라는 퇴계의 찬사가 후조당 종택 현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종택에는 고요가 흐른다. 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적지에서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글공부에 매진하고 주변 산천을 거닐며 사색을 즐기던 퇴계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종택에 담긴 선비들의 이러한 다채로운 모습 때문인가. 안동 사람들의 조상 섬김과 전통 보존 노력은 놀라울 정도다. 6?25 당시 불타버린 성재 금난수琴蘭秀(1530∼1604) 종택을 복원하기 위해 봉화 금씨 후손들이 보여준 광경은 단적인 예다. 전국 각지에서 이불, 식량을 짊어지고 와서 솥을 걸고 밥을 해 먹어 가며 1년이 넘도록 종가를 복원하던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자 했던 건 종택만이 아닌 종택에 담긴 조상의 삶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무엇이 선비 정신인가 지조와 나라 사랑의 꿋꿋한 절개 불천위 조상의 기준은 ‘훌륭함’이다. 그러나 단순히 훌륭하다 할 경우 그것은 실체 없는 모호함으로 인해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불천위 조상이 된 안동 선비들은 그 훌륭함의 속을 지조와 나라 사랑으로 채운다. 후조당 김부필의 아들인 근시재 김해金垓(1555~1593)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안 향병을 조직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무릎 꿇고 모독을 당하느니 싸우다가 죽는 영광을 택하겠다며 지극한 나라 사랑을 몸소 실천했으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계암 김령金?(1577~1641)은 인목대비의 서궁 유폐는 부당한 일이라며 두문불출하고 인조반정은 정당하지 않다며 칩거하는 등 임금을 위한 불사이군을 온몸으로 보여준다.《조선왕조실록》에서 “지조가 있어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하며 종신토록 고개를 넘지 않았으니 영남 제1인”이라 찬사할 정도로 지조의 원형이었다. 석주 이상룡李相龍(1858~1932)은 종손으로서 고향과 종택과 사당을 버리고 이국 만 리 길을 오직 하나 ‘조국 독립’을 위해 떠나갔다. “나라가 없는데 사당이 무엇이
안동을 거닐며, 사라진 선비를 만나다
이 책의 글들은 나의 구구한 고향유정과 더불어, '도산 길'에 녹아 있는 옛 선비들의 체취와 숨결을 지금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평이하게 쓴 글이다. 강원도의 오지를 다녀보면 문득 이 곳이 조국 산천의 심장과 허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듯이, 이곳 안동의 도산을 다녀보면 우리 한국의 전통과 정신이 어디에 근원하는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목차
글머리에 | 21세기에 유가儒家적 전통을 지키며 산다는 것
서설 | 유가의 도를 이어가라―안동의 종택 문화
제1부
외롭지 않아야 할 인물이 외롭게 됨을 나는 고독이라 한다―유일재 종택과 김언기
《소학?》 그대로의 인물은 어떤 모습인가―오천 광산 김씨의 7군자
충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사라진 부포에서의 사색
정승 벼슬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어부사시가의 탄생
제2부
무거운 퇴계학과 근엄한 퇴계가 아니다―도산서원의 추억
격변의 시대를 지나 역사의 유물로―도산서원의 시련
자연을 사랑했다 그것도 지극히 사랑했다―퇴계의 자연 사랑, 천연대와 천운대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한다―퇴계 식의 여유와 일상
공부에 간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퇴계의 공부법
제3부
길 없는 곳에 최초로 길을 내다―송재의 자취를 더듬으며, 온혜
흐르는 물을 보며 날마다 성찰하리―고요가 온존한 곳, 상계
한 통의 편지는 사람의 영혼을 흔들 수 있다―퇴계 식의 충고
선비 문화의 근저에는 글의 전쟁이 있었다―자부심의 고장, 하계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의 마을, 원촌
제4부
이제부터 그림 속으로 들어갑니다―도산 7곡, 단천
수태극, 산태극의 모습은 진정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도산 8곡, 가송
유산遊山은 독서와도 같다―도산 9곡, 청량산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