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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0300085 / 37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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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서문: 논어(論語)란 어떤 책인가?
<논어(論語)>는 성인(聖人\u003d孔子) 언행록(言行錄)으로 4서(四書: 大學/中庸/論語/孟子)의 하나이며 유가(儒家)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경전(經典)으로 유학자(儒學者)들이 학문하는데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저서이다.
<논어>속에는 공자(孔子)의 사상과 공자의 제자들, 그리고 공자에게 왕래했던 당시의 여러 사람들의 언행과 문답(問答)들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또한 그 저서 속에는 유학(儒學)의 깊고 오묘한 사상(思想)이 깃들어 있으며 유학의 연원(淵源)을 이루는 경전으로 한학(漢學) 영향권 내의 모든 동양인들의 사상 성립의 핵(核)이 되었던 것이다.
<논어>는 본래 노론(魯論)/제론(齊論)/고론(古論)의 세 가지가 있었다.
<노론(魯論)>은 노(魯)나라 사람들이 전하였던 것으로 20편(篇)이 수록되었으며,<제론(齊論)>은 제(齊)나라 사람들이 전한 것으로 ‘문왕(問王)/지도(知道)’의 2편이 더 많은 22편(篇)이었다. 또한<고론(古論)>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말에 공자의 옛집을 헐면서 벽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과두고문자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두의 원본(原本)들은 전한(前漢) 말에 모두 분실되었다. 단 전한(前漢) 말의 학자 장우(張禹)가 하후건(夏侯建)에게 수학(受學)할 때<노론>으로 배웠으며, 또 용생(庸生)과 왕길(王吉)에게 수학할 때는<제론>을 배워 두 가지를 비교하여 20편으로 선정(選定)한 것이 오늘날 전해오는<논어>의 원문이라고 하고 있다.
그 후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이 주(註)를 단<정현본논어>가 있었다고 하며, 위(魏)나라의 하안(何晏)이 집해(集解)한<논어집주(論語集註)>10권이 완본(完本)으로 전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그 후로도 황간(皇侃)의<논어의소(論語義疏)>형병(邢昺)의<논어정의(論語正義)> 등이 엮어졌고, 북송(北宋)의 대학자인 주희(朱熹)에 의해<논어집주(論語集註)> 7권20편이 완성되어 주희 이후 완전히 체계화되어 모든 유가(儒家)에서는<논어집주>를 근본으로 학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논어>는 누가 편찬했을까?
정현은 공자의 제자인 ‘중궁(仲弓)/자유(子游)/자하(子夏) 등이 선정하여 편찬했다.’고 했으며, 황간은 ‘공자가 서거한 후 6예(六藝)에 통달한 72제자가 공동으로 선정 편찬했다.’고 했으며, 당(唐)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문인이 선정했다.’고 했으며 정자(程子)형제는 ‘공자의 제자(弟子)인 증자와 유자(有子)의 문인들이 선정했다.’고 했으며 그 이유로 오직 두 사람만이 ‘자(子)’를 붙이고 모든 제자는 자(字)를 사용한 점을 들었다. 또 반고(班固)가 찬한<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공자가 서거한 뒤 문인들이 모여 선정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보편적인 견해로 통하고 있다.
공자는 노(魯)나라 양공(襄公) 22년(B.C. 551년) 10월 경자(庚子)일 음력(陰曆) 8월 27일 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에서 아버지 숙양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친 숙양흘(叔梁紇)은 그 추읍의 대부(大夫)로 힘이 장사였으며 원래 노나라의 시씨(施氏)와 결혼하여 딸만 9명을 두었으며 첩(妾)에게는 맹피(孟皮)라는 아들이 있었다. 공자의 어머니는 재취(再娶)였으며 공자가 3세 때 숙양흘이 사망했으며 어머니는 24세 때 사망했다. 공자는 19세에 송(宋)나라의 올관(兀官)씨와 결혼하였고 20세에 아들 이(鯉: 자는 伯魚)를 낳았다. 66세에 상처(喪妻)했으며 73세인 노애공(魯哀公) 16년(B.C. 479년) 4월 11일 서거(逝去)하였다.
이(鯉)의 아들은 자사(子思: 伋)이며 증자(曾子)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또 맹자(孟子)의 스승이라고 하며 유학(儒學)의 도통(道統)을 전하는 중용(中庸)을 저술하였다.
또 공자는 3세 때 부친을 잃고는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랐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15세에 6예(六藝: 藝樂射御書數)를 배우고 30세에 예절과 음악의 근본을 완성하고 사회에 나와 34세에 남궁경숙(南宮敬叔)과 주(周)나라 노담(老聃: 노자)에게 예절을 문의(問議)하였으며 장홍( 弘)에게 음악을 질문하였고 35세에 제(齊)나라로 가 안평중(晏平仲)과 사귀었으며 37세에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귀국하였다.
이때부터 공자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으나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은 공자의 정치사상을 받아들이는 군주(君主)가 없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자는 더욱 학문연마에 정진하여 인간의 사명과 자연의 섭리(攝理)를 터득하고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였다. 이후 자신의 학문을 현실정치에 시행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노(魯)나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6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하(天下: 中國大陸)를 주유(周游)하였다. 각 나라를 순회하면서 요순의 도(道)와 인의(仁義)의 정치사상을 강론(講論)했지만 누구 한사람 받아주는 제후(諸侯)가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고생을 겪었으며 또 이것이 하늘의 명(命)인 것을 알고 노구(老軀)를 이끌고 노나라로 귀국하여 많은 제자들과 함께 시서예악(詩書禮樂) 등의 경전(經典)을 산정(刪定)하고, 춘추(春秋)를 저작하여 흐트러진 제후의 기강을 바로잡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인 우주(宇宙)의 심오한 사상이 담긴 역(易)을 풀이하였다.
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학문의 체계를 세웠으며 동양 정치의 근본을 이루는 요순의 도를 근간으로 하여 인(仁)/덕(德)/예(藝)/악(樂)의 기틀을 잡았다. 그러므로<논어>의 내용은 공자의 인(仁)의 기본이념과 제자교육 방법, 인정(仁政)의 개요, 공자의 행동방식 등이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이 인(仁)이란 인도(人道)의 극치이며 도덕의 지선(至善)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仁)은 모든 민중에게 덕을 베풀어 모든 민중과 집권자(執權者)가 다 같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실용주의적(實用主義的) 현실주의의 정치사상이며 모든 인류(人類)를 포용하는 사랑의 발현(發現)이다.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사랑! 이것은 세계의 평화(平和)요, 모든 인류가 공감(共感)하는 이상(理想)이 아닌가.
이천(伊川) 선생은 \"논어를 읽고, 읽기 이전에도 한 사람이요, 다 읽은 다음에 뒤에 오는 것도 똑같은 한 사람으로 아무런 기질의 변화가 없다면 이것은<논어>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 권의<논어>가운데 공자 학문의 진리가 깃들어 있으며, 또 공자의 학문 세계와 행동의 진면목을 낱낱이 엿볼 수 있으며 유학(儒學)의 본원(本源)을 알 수 있고 읽는 이의 자신을 바로 정립(鼎立)할 수 있는 좋은 저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