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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5514901 / 344쪽 152 x 22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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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제17회 한국경제인연합회 ‘시장경제대상’수상! 문화일보 산업부 기자들이 전 세계를 발로 뛰며 기록한
대한민국의 수출 신화와 경제 성장 비밀! 우리 경제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통찰한 대기록 통해 대한민국 수출 40년사를 하나로 정리한 책으로,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선배 경제인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배우고, 기로에 선 한국 경제에 여전한 돌파구가 될 수출의 중요성과 그를 통한 비전을 얻는다.
혈혈단신으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났던 외화벌이의 역군들 이야기부터 건설, 전자 등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된 기업들의 성공스토리가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가슴을 흔든다. 대한민국의 살아 움직이는 신화, 생생한 기적의 현장이 우리의 열정의 유전자를 일깨운다.
출판사 리뷰
도전과 열정으로 신화를 만들어 낸 대한민국 경제 영웅들의 이야기
1964년,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의 입에는 ‘돈 좀 빌려 달라’는 소리가 아예 붙어 있었다. 검은 세단과 열렬한 환영 인파, 당당한 대통령의 이미지만 그려온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는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유엔에 등록한 120개국 중 119위의 꼴찌 경제 국가였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염원은 ‘우리도 언제쯤 필리핀이나 타이처럼 잘 살게 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그랬던 우리가 오늘날 이룬 경제 성장은 실로 눈부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11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으며 이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불과 40년 만에 이룬 경제 기적이다.
어떻게 이러한 경제 기적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화일보’의 대기획 '실록-수출 40년'의 출발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화일보는 문화일보의 내로라하는 산업부 기자들로 팀을 만들어 그들에게 전 세계를 발로 뛰며 대한민국 경제 신화의 비밀을 찾도록 했다. 그곳에는 1000미터 깊이의 땅굴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파독 광부에서부터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오늘날의 IT기업까지 바로 ‘수출의 힘’이 있었다. 부존자원 하나 없는 우리가 오늘날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출의 중요성을 안 선배 경제인들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경제의 과거.현재. 미래를 통찰한 대기록 통해 대한민국 수출 40년사를 하나로 정리한 책이다. '실록-수출 40년'은 연재 당시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은 물론이고 한국경제인연합회에서 제17회 ‘시장경제대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한 바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선배 경제인들의 도전정신과 열정을 배우고, 기로에 선 한국 경제에 여전한 돌파구가 될 수출의 중요성과 그를 통한 비전을 얻는다. 혈혈단신으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났던 외화벌이의 역군들 이야기부터 건설, 전자 등 오늘날 세계 최고가 된 기업들의 성공스토리가 잠자고 있던 우리들의 가슴을 흔든다. 대한민국의 살아 움직이는 신화, 생생한 기적의 현장이 우리의 열정의 유전자를 일깨운다.
무모한 도전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만들어 낸 대한민국 성공 신화!
-기적의 현장 속으로
1971년 9월,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 사. 스콧리스고 조선소와 기술 제휴 계약을 막 끝내고 달려온 50대 중반의 한 동양인이 갈색 머리 신사와 마주 앉아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가라앉힌 뒤 절박한 표정으로 “조선소를 지을 돈이 필요한데, 바클레이스 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사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때 동양인은 갑자기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불멸의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였다. 동양인이 말했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가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신사가 빙그레 웃으며 관심을 보였다. 그 동양인은 바로 한국의 조선 산업을 일으킨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이었다.
(4장 ‘하면 된다’ 정신으로 일궈 낸 뚝심의 한국 조선_ 137쪽)
당시 외국 정부 및 기업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타이, 터키 등지에서 종합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실패했고 우리나라도 결국 그 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농업 자금으로 쓰일 대일 청구권 자금 1억 달러를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돌렸다. 10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조상의 피 값으로 제철소를 만들게 된 것이다.
1968년 6월 15일 새벽 6시. 수평선 너머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인 만큼 실패하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오른쪽 바다로 몸을 돌림)해서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한다.” 한마디로 실패하면 다 죽자는 이야기였다.
(5장 민족의 눈물을 희망의 쇳물로 바꾼 포항제철_ 182쪽)
이건희 회장은 애니콜 휴대 전화 품질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을 접하고 난 후 당시 구미 공장을 담당하고 있던 이기태(현 정보통신 총괄 사장) 이사에게 불량 전화기를 모두 폐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 생산 중인 제품은 물론이고 시장에 있는 제품까지 모두 수거해 불태우라는 추상같은 지시였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앞마당에서는 500억 원어치 상당의 휴대 전화기 15만 대가 재로 변했다.
이러한 충격 요법이 약이 됐는지 이후 애니콜 휴대 전화의 발전은 거침이 없었다. 줄곧 10~15퍼센트에 불과하던 시장 점유율이 52퍼센트로 올라서며 모토로라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7장 초일류 한국의 미래 동력, IT 산업_ 247쪽)
1971년 9월,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 사. 스콧리스고 조선소와 기술 제휴 계약을 막 끝내고 달려온 50대 중반의 한 동양인이 갈색 머리 신사와 마주 앉아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가라앉힌 뒤 절박한 표정으로 “조선소를 지을 돈이 필요한데, 바클레이스 은행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사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때 동양인은 갑자기 지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불멸의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였다. 동양인이 말했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가 1800년대부터라고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신사가 빙그레 웃으며 관심을 보였다. 그 동양인은 바로 한국의 조선 산업을 일으킨 고 정주영 명예 회장이었다.
(4장 ‘하면 된다’ 정신으로 일궈 낸 뚝심의 한국 조선_ 137쪽)
당시 외국 정부 및 기업들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타이, 터키 등지에서 종합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실패했고 우리나라도 결국 그 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농업 자금으로 쓰일 대일 청구권 자금 1억 달러를 제철소 건설 자금으로 돌렸다. 10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조상의 피 값으로 제철소를 만들게 된 것이다.
1968년 6월 15일 새벽 6시. 수평선 너머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조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인 만큼 실패하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오른쪽 바다로 몸을 돌림)해서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한다.” 한마디로 실패하면 다 죽자는 이야기였다.
(5장 민족의 눈물을 희망의 쇳물로 바꾼 포항제철_ 182쪽)
이건희 회장은 애니콜 휴대 전화 품질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을 접하고 난 후 당시 구미 공장을 담당하고 있던 이기태(현 정보통신 총괄 사장) 이사에게 불량 전화기를 모두 폐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현재 생산 중인 제품은 물론이고 시장에 있는 제품까지 모두 수거해 불태우라는 추상같은 지시였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앞마당에서는 500억 원어치 상당의 휴대 전화기 15만 대가 재로 변했다.
이러한 충격 요법이 약이 됐는지 이후 애니콜 휴대 전화의 발전은 거침이 없었다. 줄곧 10~15퍼센트에 불과하던 시장 점유율이 52퍼센트로 올라서며 모토로라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7장 초일류 한국의 미래 동력, IT 산업_ 24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