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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개론-하 묵점기세춘선생과함께하는성리학개론

시리즈 : 성리학개론 [2]

기세춘 저 | 바이북스 | 200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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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467056 / 583쪽 165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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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한국인이라면 거의 모두가 학교에서 성리학을 배우고 ‘퇴계’와 ‘율곡’을 배우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성리학’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 성리학을 이제는 박물관에나 전시돼야 할 유물로 보거나,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근대화를 늦어지게 한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기세춘 선생은 성리학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고 성리학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다.

<하권>에서는 조선에 성리학이 수용되던 상황을 알아보고 고려 말 삼은三隱과 정도전, 서경덕 등의 선구적인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상을 살펴본다. 이어서 조선 성리학의 두 거목인 퇴계와 율곡의 사상을 고찰해 본다. 조선 성리학의 논쟁 편에서는 퇴계와 고봉 기대승에서 시작하여 율곡과 우계 성혼, 그리고 실학자들에게까지 이어진 ‘사단칠정 논쟁’, 퇴계와 고봉의 인식론 논쟁인 ‘격물 논쟁’에 이어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 등의 인식론, 인성과 물성이 같은지 다른지를 규명하는 ‘낙호 논쟁’ 등을 다룬다. 그다음으로 박세당, 김만중, 임성주, 다산, 혜강 등에 의해 성리학이 비판·부정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마지막 제8부에서는 성리학과 서양철학 및 현대과학 등을 비교·분석해 성리학 고유의 가치를 고찰해 보고, 한민족이 계승해야 할 성리학적 인간상인 ‘선비’의 정신을 살펴본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성리학! 우리에게 늘 숙제로 남아 있는 그 이름!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성리학’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혹자는 충효 사상을 강조하고 사군자를 노래하는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또 현대와 같은 물질문명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학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조선의 성리학을 사대주의와 당쟁의 원흉으로 생각하거나, 근대화를 늦어지게 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성리학의 이미지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각자의 사고방식이나 학... 성리학! 우리에게 늘 숙제로 남아 있는 그 이름!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성리학’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 혹자는 충효 사상을 강조하고 사군자를 노래하는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또 현대와 같은 물질문명 시대에 맞지 않는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인’ 학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조선의 성리학을 사대주의와 당쟁의 원흉으로 생각하거나, 근대화를 늦어지게 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성리학의 이미지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각자의 사고방식이나 학문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성리학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거치며 피상적으로나마 성리학에 대해 배운다. 지폐에 등장하는 퇴계와 율곡이 조선 성리학의 양대 거목인 것도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성리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퇴계와 율곡의 사상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500년 넘게 지속된 조선의 정신은 ‘성리학’이었지만, 후손인 우리는 성리학의 실체를 대강으로라도 알지 못한다. 성리학은 이제 박물관에 보관된 ‘신비로운 유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성리학은 어떻게 그토록 오래 조선을, 나아가 동아시아를 지배했을까? 성리학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까? 퇴계와 율곡을 훌륭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로 조선의 성리학이 사대주의와 당쟁을 불러와 조선을 멸망의 길로 이끈 것일까? 이 모든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리학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묵수나, 또는 반대로 무조건적인 배타의 태도가 아닌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돼야 한다. 묵점 기세춘 선생의 『성리학개론』은 이를 위해 ‘성리학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기치를 내걸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성리학은 불교·도교철학을 흡수해 유학을 개혁한 ‘신유학’ 오늘날 한국은 유교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남아 있는 사회로 꼽힌다. 우리는 흔히 ‘전통 문화는 곧 유교 문화’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보통 ‘유교’ 내지 ‘유학’이라 하면 ‘공자’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유교 문화’라고 한데 뭉뚱그려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문화에는 관혼상제와 같은 유교 문화뿐 아니라 불교적인 요소와 각종 민간신앙이 골고루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 사회였던 조선이 건국 초에 강력한 배불 정책을 시행하고 왕실 차원에서 도교적인 요소가 깃든 의식들을 점차 없애 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양상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성리학을 유학의 테두리에만 한정 지어 생각하는 데서 범하게 되는 오류다. 즉 이는 성리학의 정체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문제다. 성리학을 ‘신유학’이라 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공자 이래 1,500년을 이어 온 ‘유학’과는 다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왕조의 흥망성쇠와 더불어 유교·불교·도교도 그 세勢를 달리했다. 한漢에서는 유교가, 위진남북조에서는 도교와 불교가 융성했고, 당唐에 이르러서는 도교가 국교 자리에까지 오르고 유교는 도교의 보조 역할에만 머물렀다. 외세에 지배당한 남송南宋대에 이르러서는 외세의 배격과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고, 따라서 불교와 불교화한 도학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이때 주희가 나타나 전통적인 이학理學과 개혁적인 기학氣學 등 신유학 운동을 집대성하여 유학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를 흡수한 ‘성리학’을 체계화한 것이다. 비록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여러 글을 통해 도교와 불교 사상을 비판한 바 있지만, 주희가 체계화한 성리학은 본래의 공자학을 기본으로 노장老莊과 불교를 결합시킨 것이었다. 유교의 천天 사상과 불교의 심성心性, 노장의 도道와 기氣 개념이 한데 어우러진, 유儒·불佛·선仙 통합의 학문이 바로 성리학인 것이다. 따라서 성리학은 오랜 세월 동아시아의 정신 세계를 지배해 왔던 유교·불교·도교의 사상이 모두 녹아 있는 가장 동아시아적인 학문이다. 성리학은 동아시아의 사상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다 오늘날 한·중·일 3국은 역사 문제와 외교 및 실리 문제로 서로 교류·경쟁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세계의 다른 지역에는 없는 동아시아의 세 나라를 정서적으로 융합하는 뭔가가 있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인종적으로 가깝다거나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기 때문은 아니다. 중동에서는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가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종교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동아시아에는 종교전쟁이 없다. 그것은 바로 공통된 사상적·문화적 배경인 유교 내지 ‘성리학’의 조화사회 지향성에 있지 않을까? 성리학은 11~19세기 동안 중국의 송·원·명·청의 네 왕조에 걸쳐 약 1천 년간 중국의 지배 사상이었고, 조선과 일본의 통치 이념이었다. 물론 한·중·일 3국이 역사적으로 성리학을 수용하는 정도도 달랐고, 격동의 현대사를 경험하면서 오늘날 성리학의 유산들이 존재하는 양상은 서로 달라지게 됐지만, 그 기본적인 사상적 유사성은 여전히 세계의 다른 문화권에는 없는 공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리학은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동양 사상’의 특징들을 만들어냈다. 천명天命, 천리天理, 태극太極, 이기理氣 음양陰陽, 천인합일天人合一, 천하일가天下一家, 민포물여民胞物與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 천지와 우주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바라보았고, 이것이 사회 속에서는 자연과의 조화 및 공동체정신의 강조로 이어졌다. 정신과 물질을 엄격히 분리하고, 개인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해 온 서양과는 달리, 동양 사상에서는 공동체적인 도리와 덕성, 개인 내면의 호연한 기상과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수신修身을 중요시했다. 오늘날 세계의 어느 지역보다도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아직도 대의명분과 충효 사상, 고향과 가족이 중시되고 있는 핵심에는 바로 성리학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성리학 ‘개론서’ 성리학은 조선왕조 500년의 통치 이념이었고 한민족의 사상과 생활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놀랍게도 국내에 ‘성리학개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은 여태껏 없었다. 특정 학자나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이나, 성리학의 전체적인 성격을 조명한 연구서들은 있었으나, 성리학의 각 주제와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두루 설명한 ‘개론서’는 일찍이 시도된 바가 없었다. 성리학의 세계 자체가 장구한 세월과 역사를 아우르고 있으며, 중국에서 태동해 조선의 통치 이념으로 수명을 다할 때까지 방대한 범위를 다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재야 한학자로서 동양고전의 왜곡과 오역을 바로잡는 데 힘써 온 묵점 기세춘奇世春 선생이 10년간의 각고 끝에 탄생한 역작이다. 이미 선생은 동양고전들을 ‘재번역’한 책들을 많이 펴냈지만, 이 책만큼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학 개론서’라는 부담감에, 이미 6년 전에 탈고를 하고도 수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듭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이 책의 범위와 체계와 깊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다. 한문을 없애고 주제별로 정리했으나 개념 풀이에 지면을 다 소비해 버리고 깊이가 없어져 폐기하기도 했다. 인물 위주로 하면 주제의 중첩을 피할 수 없어 산만해질 테고, 주제별로 하면 시대적·인적 상황이 제거되어 건조해질 것이 염려됐다. 그래서 우선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구분하고 독자들에게 낯익을 인물을 앞세운 다음, 그 안에서 주제별로 다시 배열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자 소개

재야 운동가이자 학자이다. 193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의병활동을 했던 조부와 항일운동을 했던 부친의 반대로 일본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우는 등 한학수업을 받다가 뒤늦게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하였다. 전남대 법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법학보다 진보적 신학과 철학서적에 탐닉하였고, 4.19혁명에 적극가담했으며, 5.16이 일어나자 입산, 레닌전을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동학혁명연구회'를 창립하였고, 후진국개발론에 몰입하면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후 '평화통일연구회' '사월혁명연구회' '전북민주동우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국민화합운동연합' 등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한편, 동.서양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묵자'를 완역 출간한 바 있고, 문익환 목사와 『묵자』에 대해 옥중서신으로 토론 논쟁한 글을 묶은 '예수와 묵자'를 출간하여 묵자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이다. 또한 그는 경전 외에도 우리나라 유일본인 '중국역대시가집'을 신영복 선생과 공역으로 출간한 바도 있는 몇 안 되는 한문학자이면서 서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어 '주체철학 노트'를 출간하기도 했다. 또한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시리즈인 '유가', '묵가', '도가', '주역'(2002),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동양 사상 바로 알기'를 주제로 한 '동양고전 산책' 1, 2권(2005)을 펴냈다. 우리나라에 나온 동양고전 번역서들이 왜곡과 변질, 오역이 심함을 지적하고 재번역 운동에 앞장서 2006년 '장자'의 재번역서를 내놓았다. 

책 속에서

이 책이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이미 2001년 3월에 탈고했으나, 미흡한 감이 있어 출간을 보류했었다. 그리고 2003년 3월부터 노촌 이구영 선생님이 주관하셨던 이문학회에서 고전강좌를 하면서 수정·보완했고, 2004년부터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에서 강의하면서 다시 보완했다. 아직도 부족함을 통감하고 있으나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나머지는 후학들에게 미루기로 했다. 아직 시작일 뿐이다. 더욱 좋은 참고서가 나오기까지 징검다리 역할로 만족할 것이다. 후학들의 분발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성리학개론』이란 책은 아마도 우리에게는 처음인 것 같다. 범위와 깊이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인물별로 할 것이냐 주제별로 할 것이냐의 문제로 엎치락뒤치락했다. 인물 위주로 하면 주제의 중첩을 피할 수 없어 산만해지고, 주제별로 하면 시대적·인적 상황이 제거되어 건조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학문의 완성도보다는 독자들을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구분하고 독자들에게 낯익은 인물을 앞세운 다음 그 안에서 주제별로 다시 배열했다. 다소 중첩되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비교하면서 읽으면 선현들의 면모와 고민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이다.
- 저자 서문 '우리 정체성에 대한 변명' 중에서


성리학의 만물일체 사상과 천심이 곧 인심이라는 학설은 인성평등론을 의미한다. 인간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천심을 품부받았으므로 인심은 천심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은 누구나 다 같은 것이다. 또한 인간은 만물 중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퇴계의 이러한 인성평등론은 정치적인 인권의 평등으로는 진전되지 못했다. 오히려 선천적인 기질의 차이에 따라 타고난 성性에도 편차가 있음을 시인하여 공자와 한유의 성삼품설을 옹호했다. 이렇게 보면 퇴계도 봉건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 제5부 '조선의 성리학' 3장 '퇴계 이황" 중에서 (87쪽)


사람들은 대체로 당쟁의 원인을 성리학의 공리공론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식민사학의 영향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일본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조선의 유교를 황국신민유교로 왜곡하고, 나아가 조선의 당쟁을 망국의 요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그 근원을 퇴계와 율곡의 주리·주기 논쟁에서 찾는다. 이러한 왜곡은 그들에게서 교육받은 신민사학자들과 유학자들이 한국의 강단을 지배함으로써 지금까지 불식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율곡은 당쟁의 당사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당쟁을 불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 제5부 '조선의 성리학' 4장 '율곡 이이' 중에서 (197쪽)

목차

목차
우리 정체성에 대한 반성
제5부. 조선의 성리학
1장. 조선의 성리학 수용
역사적 배경
2장. 조선의 선유들
목은 이색 | 포은 정몽주 | 삼봉 정도전 | 양촌 권근 | 화담 서경덕
3장. 퇴계 이황
퇴계는 누구인가? | 퇴계학은 존재하는가? | 천론天論 | 우주론 | 인간론 | 도덕론 | 정치론
4장. 율곡 이이
율곡의 이력 | 우주론 | 인성론 | 도덕론(誠) | 정치론 | 경제론
제6부. 조선 성리학의 논쟁
1장. 사칠 논쟁
퇴계와 고봉의 사칠 논쟁 | 율곡의 기발일도설 | 성호와 다산의 사칠론 | 비판과 평가
2장. 격물 논쟁
유학의 인식론 | 퇴계와 고봉의 격물 논쟁 | 율곡의 경험론적 인식론 | 연암과 다산의 선험주의 | 혜강의 유물론적 인식론
3장. 낙호 논쟁
인물성 동이 논쟁 | 논쟁의 발단과 전개 | 반성과 비판
제7부. 조선 성리학의 해체
1장. 시대적 요청
2장. 조선 성리학의 해체 과정
박세당의 반주자학 | 김만중의 신유학 비판 | 임성주의 기철학 |
다산의 성리학 부정 | 혜강의 구학舊學 해체
제8부. 성리학 다시 보기
1장. 성리학은 미개한 것인가?
성리학과 서양철학 | 현대과학과 성리학 | 우리의 반성
2장. 선비정신
선비정신은 조선의 정체성 | 21세기와 선비정신
주요 용어 및 인명 찾아보기
원문 출전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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