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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89047308 / 574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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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근대 초기의 매체 문화는 사회의 격변 속에서, 복잡한 발전 과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역사를 입문 형식으로 간단히 되짚어 보고 있다. 과연 어떤 새로운 매체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고, 그것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매체들을 그 시대의 특징적인 현상들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파악해 가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근대 초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막스 베버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각각 “합리화” 과정, “문명화 과정”이라고 특징지은 1400~1700년, 즉 근대 초기에는 세계사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근대 초기는 르네상스·인문주의, 초기 자본주의와 중상주의, 종교개혁, 30년 전쟁 등 수많은 전쟁, 절대주의, ‘서적 인쇄’의 발명 등이 있었던 시기이고, 갈릴레이, 뉴턴, 다빈치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고 콜럼버스, 바스쿠 다가마, 에르난 코르테스 등이 ‘신세계’를 정복하고 해외 팽창을 한 시기였다. 즉 세계 경험의... 근대 초기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막스 베버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각각 “합리화” 과정, “문명화 과정”이라고 특징지은 1400~1700년, 즉 근대 초기에는 세계사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다. 근대 초기는 르네상스·인문주의, 초기 자본주의와 중상주의, 종교개혁, 30년 전쟁 등 수많은 전쟁, 절대주의, ‘서적 인쇄’의 발명 등이 있었던 시기이고, 갈릴레이, 뉴턴, 다빈치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오고 콜럼버스, 바스쿠 다가마, 에르난 코르테스 등이 ‘신세계’를 정복하고 해외 팽창을 한 시기였다. 즉 세계 경험의 합리화와 세속화 속에서 근대 사회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근대 초기가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회 경제적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킨 결과는 오늘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근대성’ 문제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매체 없이는 문화도, 사회 변화도 없었다 그렇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근대 초기에 그러한 사회 변화와 매체는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 파울슈티히의 생각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사회 변화는 곧 매체의 변화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지식과 정보, 감성을 저장하고 전수하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방향을 잡아주고 지배적 힘이 되는 ‘매체의 변화’ 없이 ‘사회 변화’는 없음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 초기를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인류 사회가 바뀐 이래 최초로 매체적 세계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근대 초기는 설교자, 가인歌人 같은 전통적인 인간 매체에서 소책자, 서적, 신문 같은 새로운 인쇄 매체로 주도권이 넘어간 시기였다. 구술 ‘매체’ 문화에서 문자 ‘매체’ 문화로 전환된 시기인 것이다. 매체로 달라진 역사, 매체로 촘촘해진 역사 르네상스, 종교개혁, 절대주의, 신문의 탄생, 인쇄 매체 혁명 등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하게 기억되는 역사적 사건들을 매체의 프리즘으로 보면 역사는 달라 보이고 촘촘해진다. 르네상스는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다! 우리가 근대의 ‘출발’로 알고 있는 르네상스·인문주의 시기는 출발에 앞서 ‘종결’하는, 완결판의 시기였다. 르네상스 시기에 여성, 춤, 조형물 등 전통적인 매체는 매체 기능을 잃고 단순한 도구가 되었다. 즉 제의 매체로서 여성이 지닌 초월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여성의 육체는 더 이상 내세로 가는 다리가 아니었고 ‘신성한 결혼’은 더 이상 우주론적으로 의미 있는 다산 숭배의 정점이 아니었다. 여성은 매체적 특징을 잃고 종속적인 존재, 객체이자 도구가 되고 말았다. 또한 춤은 ‘예술 작품’으로 변화했고 연극은 오락이 유일한 목적이 되었다. 종교적 의미가 담긴 건축물을 세우던 건축술은 세속적 기능을 지닌 비종교적 건물에 쓰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는 역시 ‘출발’의 시기였다. 손으로 직접 쓴 매체, 즉 수기 매체로서의 서신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에라스무스, 토머스 모어, 교황 피우스 2세, 콜루치오 살루타티 등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의견과 경험을 교환하는 핵심 매체로 서신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문주의자들의 서신은 네덜란드에서부터 이탈리아까지 유럽 전체에 독자층을 확보하면서 문예에 관심이 있는, 즉 ‘읽기’를 지향하는 새로운 공공영역(공중)이 열리게 했고, ‘근대 주체’를 낳은 주요한 요소였다. 또한 서신은 수기 매체에서 인쇄 매체로 발전하면서 이후 신문과 새로운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신에서 지폐, 어음, 신문으로 근대 초기 3백 년 역사 동안 서신은 그 어떤 매체보다 널리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얘기한 대로 서신은 르네상스 시기에 인문주의가 확산되고 풍부해지는 데 기여했다. 또한 서신은 초기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커다란 힘이었다. 당시 상거래를 위해 쓰이던 가격 표기 등기 ‘우편’은 지폐를 낳았고,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비방하기 위해 보낸 서신은 이후 차용증으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15세기에 널리 이용된 정보 서신은 17세기 신문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보 서신은 정치적, 상업적 동료들에게 유용한 소식을 전하던 서신이었는데, 그 서신은 경쟁 상품, 다른 시장 동향, 새로운 원료 같은 경제적 정보뿐 아니라 다른 곳의 정치 상황, 주민의 수요, 도로와 통행로 상태, 노상강도나 전쟁을 피하는 운송, 관습과 풍습, 새로운 발견과 발명 등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16세기 말 탁시스 가문이 최초로 자본주의적 우편 영업을 시작하면서 정보 서신은 활발하게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소식이 되었다. 즉 신문의 주요 특징인 보편성과 주기성은 정보 서신에서 이미 나타났던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신문의 제호에 쓰이는 “노이에 차이퉁Neue Zeitung”(새 소식)이나 “포스트Post”는 신문이 정보 서신에서 유래했음을 증명한다. 종교개혁의 성공은 낡은 매체와 새로운 매체의 대결에서 새로운 매체가 승리한 결과였다! 독일어로 쓴 소책자와 성경을 들고 쉼 없이 교황과 성직자를 비판했던 루터의 승리는 새로운 매체의 승리였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성직자, 설교자, 연극과 같은 ‘오래된’ 인간 매체를 이용하여 타락한 교황과 가톨릭교회를 옹호하려고 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은 전단지, 소책자, 독일어 성경 등 ‘새로운’ 인쇄 매체를 활용하면서 종교개혁을 외쳤다. 종교개혁가들의 매체는 큰 호응을 얻었는데, 예를 들어 루터의 소책자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1520년)은 초판 4000부가 닷새 만에 다 팔리고 1520년 한 해 동안 15쇄 이상을 찍었고, 독일어로 된 루터 성경(1534년)은 10만 부가 팔렸다. 당시 독일과 유럽의 인구와 문맹률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판매였다. 그래서 결국 로마 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가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단자’를 투옥하고 죽이는 것이었지만, 이단적 입장은 이제 더 이상 인간 매체인 이단자 자신을 투옥하고 파문하거나 죽이는 것을 통해 제거될 수 없었다. 이단적 견해는 오히려 인쇄 매체(소책자와 전단지)로 제작된 부수만큼 복제되어 훨씬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더 이상 인간 매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다. 인쇄 매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절대주의 권력은 매체 없이 불가능했다! 절대주의 시기는 전통적인 개별 매체들이 하나의 새로운 거대한 행위 매체(권력)로 결합된 시기였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말로 표현되는 절대 군주의 권력은 전통적인 매체들이 도구가 되면서 현실로 등장했던 것이다. 화려하고 잘 짜여진 베르사이유 궁전과 정원, 국왕의 기상과 아침 화장에서부터 국왕의 저녁 기도까지 정해진 에티켓과 예식으로 이루어진 궁정의 일상생활, 무도회와 궁정 축제는 모두 전통적인 인간 매체와 조형 매체가 루이 14세의 위엄과 권력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된 모습이었다. 절대주의 궁정이 국가 재정의 1/4 이상을 먹어 치웠는데도 한동안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신문의 뿌리인 서신, 설교자, 가인 신문은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았다. 신문은 인간 매체인 가인에게서 시사성을 넘겨받았고, 설교자와 서신이 갖고 있던 주기성을 이어받았다. 그 대신, 설교자와 가인은 매체적 성격을 잃어버렸다. 또한 신문이 지닌 보편성은 서신 매체가 이미 보여 주고 있던 성격이었고, ‘전단지’가 출현하면서 비로소 신문은 대중적 시장을 통해 독자 대중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공공성을 가질 수 있었다. 결국 17세기 초에 탄생한 근대 언론, 신문은 이전 매체의 매체적 성격을 빼앗으면
목차
옮긴이 서문
서론 : 시초부터 중세 말까지의 매체의 역사
1장 개관 : 3세기 동안의 사회 변화의 핵심 영역
2장 르네상스의 매체사적 의미
3장 초기 자본주의와 서신 매체의 다기능적 역활
4장 도시 신분제? 사회의 매체
5장 농민 전쟁 시기까지의 농촌 지역 매체
6장 매체의 역사로 본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7장 30년 전쟁 시기까지의 선전 매체 전단지
8장 절대주의의 매체 문화
9장 신문 : 17세기에 나타난 초기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핵심 매체
10장 벽 매체와 벽보 : 정신정,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기능
11장 인쇄 : 서신, 낱장 문서, 가철본, 달력, 신문, 벽보 그리고 서적
12장 연극의 세분화와 새로운 입지
결론 : 근대 초기의 매체 문화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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