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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인가국가인가

시리즈 : 서강인문정신 [18]

이종욱 저 | 소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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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396124 / 333쪽 160 x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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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한국은 과연 단군의 자손인가? 이종욱 교수는 이른바 ‘통설’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고, 삼국사기를 고대사 복원의 중심 문헌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백제 왕성인 풍납토성의 발굴과 신라 나정 유적의 발굴은 자신의 고대사 체계가 정당함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한국인은 과연 단군의 자손인가?” 1. 역사는 과거 있었던 사실 그대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종욱 교수는 이른바 ‘통설’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고, 삼국사기를 고대사 복원의 중심 문헌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백제 왕성인 풍납토성의 발굴과 신라 나정 유적의 발굴은 자신의 고대사 체계가 정당함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종욱 교수에 따르면 신라 내물왕 이전 기록들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가 되는 것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본격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고 활동하는 연대는 통설보다 ... “한국인은 과연 단군의 자손인가?” 1. 역사는 과거 있었던 사실 그대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종욱 교수는 이른바 ‘통설’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고, 삼국사기를 고대사 복원의 중심 문헌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백제 왕성인 풍납토성의 발굴과 신라 나정 유적의 발굴은 자신의 고대사 체계가 정당함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종욱 교수에 따르면 신라 내물왕 이전 기록들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가 되는 것이며, 고구려 백제 신라가 본격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고 활동하는 연대는 통설보다 훨씬 올라가게 된다. 통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일제 식민 사학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식민 사학을 극복하고 민족 사학을 건립하자는 구호가 팽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쓰다 소키치가 발명한 식민 사학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이교수는 진단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 사학이란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재구성하는 것인데, 정당한 사료 비판 없이 위지동이전을 중심 문헌으로 삼고, 삼국사기 신라 내물왕 이전 기록을 신화로 탈바꿈시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이 삼국사기보다 믿을 수 있는 사료라는 유일한 근거는 그 성립 연대가 삼국사기보다 앞섰다는 것인데, 삼국지 위지동이전은 기본적으로 위촉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료이므로 그 방계 기록인 동이전을 한국 고대사의 중심 사료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저자는 줄곧 주장해 왔다. 오히려 성립 연대는 늦지만 한국 고대의 정치 상황을 기록한 기본 사료로는 삼국사기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 민족사에서 한국사로 전환해야 통설이 갖고 있는 또다른 문제점은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고대에 덧씌워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란 상상의 공동체를 발명하고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으로 삼는 비과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저저는 주장한다. 한국인의 성씨만 보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이 신라에서 유래한 성씨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폄하 내지는 비하하고 단군과 고구려를 숭상하는 길고 강한 역사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일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지난 60여 년 동안 현대 한국사학이 민족·민족주의 담론으로 만든 ‘민족사’(또는 국사)와 필자가 말하는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로서 ‘한국사’는 다른 것이다. 둘은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민족사와 한국사의 역사체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제창하는 역사체계가 어떤 것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 민족사는 현대의 한국인이 구석기시대 이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대신라, 고려, 조선 등 ??국사?? 교과서에 들어가 있는 모든 왕국의 사람과 피를 나누고 그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고구려인과 현재의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륙을 지배하고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막은 고구려를 생각하며 자긍심을 갖는다. 말갈족 대조영이 세운 발해를 한민족이 세운 국가로 보는 것도 들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 가운데 주몽의 자손이 있는가? 대륙을 정복한 광개토왕이나 수·당과 전쟁을 치른 을지문덕 장군 그리고 연개소문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런가 하면 고조선의 단군, 부여의 동명, 백제의 온조를 시조로 하는 사람들은 있는가? 현대 한국사학이 이에 대해 답할 수 없다면 그동안 한국사학이 만들어 온 민족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정복되어 망한 뒤 그들의 존재는 역사의 무대로 넘어갔다. 그들의 후손은 대신라(이른바 통일신라)인이 되어 그들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지금까지 민족사는 이런 사실을 은폐했다. 필자가 제창하는 ‘한국사’는 현재 한국인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신라인을 시조로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데서 출발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대신라는 백제, 고구려를 평정한 뒤 백제인은 5두품, 고구려인은 6두품까지 편제하며 신라인으로 편입했다. 그것도 소수의 고구려인과 백제인만을 두품 신분으로 편입했다. 그 결과 피정복국 백성이 된 백제와 고구려인은 그들 왕국의 역사적 유산을 대신라 왕국에 전할 수 없었다. 대신라에서 그들이 정복한 백제와 고구려 왕국의 역사적 유산을 받아들일 까닭이 없다. 고구려의 거문고가 신라에 전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고구려의 역사적 유산이 온전하게 살아남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한국사학은 민족사를 만들며 이러한 사실은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는 현대 한국사학이 만든 민족사에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단군을 한민족의 시조로 만든 민족사는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강조하며 다른 많은 사실은 은폐하고 강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현재의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근현대 일본 역사학은 순수한 학문의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그러한 역사학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역사가들은 그들이 만든 역사를 통하여 국가를 위해 봉사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 국민(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천황 중심의 고대사를 발명한 것이 좋은 예다. 일본 고대사를 날조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한국의 사료를 조작하는 방법을 썼다. 일본 고대사는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그러한 역사 날조가 필요했다. 식민사학자들은 실증사학을 내세운 그러한 역사 조작을 객관적·과학적 역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신라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인정하면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할 수 없다. 해방 후 한국사학도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결국 남한과 북한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며 한 민족 두 국가 체제가 되었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뉜 한국인의 통합을 위해 찾은 것이 가상의 공동체인 민족이고, 그러한 민족의 역사가 바로 민족사다. 현대 한국사학이 만든 민족은 하나의 이념(사상)이 되어 정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후식민사학의 정체다. 필자가 말하는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로서 ‘한국사’는 현실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 일본의 역사학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한국사 기록을 조작해 일본의 기원을 찾는 그런 방법을 ‘한국사’는 거부한다. 내물왕 이전의 역사로 한정하면 민족사를 만든 현대 한국사학은 제국 일본의 역사학이 발명한 역사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결과 해방되고 나서도 한국사학에 의하여 내물왕 이전의 역사가 은폐·말살되어 왔다. 그와 달리 ‘한국사’는 과거에 있었던 역사 그 자체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3. 고고학 발굴로 입증되는 이종욱의 ‘본연의 역사’ 한국 고대사를 삼국사기 중심으로 서술하는 이종욱의 고대사 체계는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답해주는 고고학 발굴의 성과가 나왔다. 하나는 백제 왕성으로 밝혀지고 있는 풍납토성의 발굴이고, 다른 하나는 신라의 건국 신화가 역사임을 입증해주는 경주 나정 유적의 발굴이다. 풍납토성은 한성 백제가 이미 고도의 국가 단계였음을 웅변하는 유적이다. 쓰다 소키치의 사학으로는 풍납토성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쓰다 소키치의 틀을 따르고 있는 현대 한국 사학도 이를 설명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또 경주 나정의 발굴은 지금껏 신화 취급을 받아온 신라의 건국 설화가 역사적 사실임을 밝혀주는 유적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20세기 이래 한국인은 건

저자 소개

  • 저자 : 이종욱

목차

목차
책머리에 |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프롤로그
1. 한국인은 단군의 자손인가?
단군을 시조로 하는 민족은 없었다 / 고려·조선의 전통적 관점에서 본 우리 역사 / 한국인의 혈통을 찾는 현대 한국사학이 만든 민족사 / 민족을 만든 민족사의 문제 /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적 유산을 찾는 '한국사' / 필자의 역사하기가 갖는 특성
2. 민족사가 은폐한 한국인의 역사적 고향, 신라
3.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속의 통탄할 역사 왜곡
4. 이 책을 쓰는 목적과 다루려는 내용
제1장 한국 후식민사학은 일제 문화정책의 사생아다
제1절 일제 식민사학고 한국 후식민사학의 연쇄
1. 일제 문화정책에 앞장선 식만사학자 쓰다 소키치
쓰다 소키치의 한국사 말살 / 제국일본이 한국사를 말살한 이유
2. 20세기에 전개된 식민사학의 연쇄
현재 일본의 식민사학 연쇄 / 식민사학의 연쇄, 한국 후식민사학
3. 고고학 발굴로 드러난 후식민사학의 허구성
4. '본연의 역사'로 보면 달라지는 사실들
5. 식민사학·후식민사학과 본연의 역사의 관계
식민사학과 후식민사학의 상동환계 / 후식민사학과 본연의 역사의 상사 관계 / 두 패러다임의 이동관계
6. 후식민사학의 무게, 그 폭력성을 넘어
제2절 일제 식민사학의 허구성
1. 『삼국사기』의 왜를 보는 식민사학의 역사날조
2. 일제 식민사학이 발명한 실증사학의 덫
제3절 일본 국민(민족)을 만들기 위한 실증사학
제2장 누가 민족을 만들었나?
제1절 한국사학을 민족이라는 이념의 무대로 끌고 간 손진태
1. 이념으로서의 식민족주의
2. 역사 재판관 손진태
3. 식민족주의의 내용과 그 문제
4. 식민사학과 식민족주의사학의 관계
표면적으로 다른 점 / 내용면에서 같은 점
5. 식민사학 - 신민족주의사학 - 수정론 - 『국사』의 연쇄
6. 손진태, 이병도에서 시작한 후식민사학
제2절 버려야 할 '민족사'
제3절 한국인에게 또 하나의 신앙이 된 민족
제3장 민족을 만든 후식민사학은 역사왜곡 파티를 하고 있다
제1절 관학파의 내물왕 이전 역사 왜곡
1. 손진태의 건국신화 허구론
2. 이병도가 시작한 삼한론
3. 식민사학의 사생아인 수정론
4. 대통령이 구청장이라는 식의 부체제설
5. 김, 씨, 박 씨의 시조까지 바꾸는 코미디
6. 혁거세가 3세기 초의 인물이라는 역사왜곡
7. 고고학에서 말하는 원삼국시대론
8. 후식민사학이 발명한 역사의 근본적 문제
제2절 한국사학을 마비시킨 실증사학의 덫
1. 일제와 한국 실증사학의 연쇄
1세대 이병도·손진태의 실증사학 / 3~4세대 후식민사학자들의 수정론
2. 이른봐 사관에 따른 역사체계의 문제
3. 본연의 역사로 전환해야 할 필연성
제3절 갈림길에 선 후식민사학
1. 평행선을 달리는 두 역사체계
2. 『삼국지』중심의 후식민사학
3. 『삼국사기』 중심 본연의 역사
4. 한국사학에 닥친 역사체계 변화
제4절 구렁이 담 넘듯 변신하는 후식민사학
제5절 버려야 할 후식민사학을 위한 면죄부
1. 강한 역사를 추구한 민족사의 문제
2. 면죄부가 된 식민사학 청산론과 실증사학론
제6절 후식민사학을 고수하려는 학문적 폭력
제4장 한국,한국인을 만든 역사 탐구의 정당성이 밝혀지다
제1절 나정 유적을 통해 본 내물왕 이전 역사
1. 건국신화 속의 나정
2. 후식민사학을 넘어
3. 건국신화와 신라의 역사
후식민사학과 본연의 역사 / 나정 유적과 본연의 역사 / 건국신화에서 시작하는 신라의 역사 / 신라 건국신화와 한국인의 관계
4. 타당성이 증명된 본연의 역사
제2절 백제 왕성 발굴과 본연의 역사의 타당성
1. 평행선을 달리는 백제의 역사
2. 백제왕성 풍납토성 발굴
3. 후식민사학이 날조한 백제 역사
4. 풍납토성과 본연의 역사
5. 후식민사학의 무대를 떠난 본연의 역사
제3절 한국인의 시조들이 살았던 신라의 역사
1. 입방설도의 의미
2. 나정유적이 갖는 역사적 의미
3. 『삼국사기』에 나오는 초기 국가의 발전단계
건국신화와 추장사회, 소국단계 / 소국연맹·소국병합 단계
4. 6촌과 6부의 정치적 성격 변동
5. 골품제의 구조에 대한 이해
6. 한국 성씨의 뿌리로서 종성과 6부성
제5장 '민족사'인가, '한국사'인가? -한국, 한국사를 보는 역사의식의 전환을 위하여
제1절 후식민사학을 떠나게 한 힘
제2절 '민족사'를 넘어 '한국사'로
제3절 필자가 제창하는 '본연의 역사'체계
제6장 민족인가, 국가(국민)인가? -한국인의 정치의식 전환을 위하여
에필로그 | 루비콘 강을 건너며
후기와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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