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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행복의나라로갈테야

한대수 저 | 아침이슬 | 200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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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88996526 / 278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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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32년전 장발에 긴 부츠를 신고 ’물 좀 주소’라며 자유에 대한 갈증을 토해냈던, 최초의 ’한국 히피’이자 ’포크록의 선구자’ 한대수의 자서전이자 <한대수,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의 개정판이다. 히피즘의 영향을 받은 그 자유로움을 이 땅에서 실천한 한대수의 굴곡 많았던 세상살이가 담겨있다.

이 책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좌절, 고독과 화해의 이야기이다. 그가 인터넷에 빠져 있고 테크노에 열광하고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평화' '관용'을 이야기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의 특징과 내용 국내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진정한 히피였던 대중음악계의 신화, 한대수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삶, 사랑, 음악 이야기! 1. 외로움과 좌절을 딛고 행복의 나라로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 ▶책의 특징과 내용 국내 최초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진정한 히피였던 대중음악계의 신화, 한대수가 직접 말하는 자신의 삶, 사랑, 음악 이야기! 1. 외로움과 좌절을 딛고 행복의 나라로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1960년대 이전에 세상 빛을 본 사람이라면 한대수의 라는 노래가 꽤 친숙할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는 물론, 차 안에서건 찻집에서건 종종 들을 수 있는 아주 쉽고 편안한 한대수의 대표곡이니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 노래를 양희은의 노래로만 알고 있기도 한 모양인데, 70~80년대의 포크송을 좋아하던 세대라면, 양희은, 송창식 등의 쟁쟁한 이름 앞에 한대수를 주저 없이 놓으리라. 한대수는 1948년 부와 명예가 보장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이자 신학대 초대 학장이었으며, 아버지는 장래 우리나라에도 핵물리학자가 필요할 거라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핵 분야에서 최고였던 미국 코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부산의 부뷰한 사업가 집안의 맏딸이었다. 그러나 평안과 행복도 잠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한대수의 삶에는 깊은 어둠과 외로움이 늘 따라다니게 된다. 한대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항상 고통 속에 있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삶의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도, 철학도 답을 주진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이웃들에게 더욱더 깊은 고통을 주고 강요하는 삶이라는 이름의 틀에 갇혀 있다. 삶이란 진실로 아이러니이고, 나 자신 또한 아이러니이다. 나는 몹시 외롭다.\" 이 지독한 외로움이 한대수를 음악과 사진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마냥 쏟아내는 대신, 희망의 언어와 행복의 멜로디, 사진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는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와 목소리로 세상을 노래했다. 2. \"음악을 직접 만들어야 아티스트일 수 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진정한 '프로 아티스트'였다. 음악평론가 이백천 씨의 말을 들어보자. \"바로 엊그제 같은데 30년 ㅅ세월이 흘렀다. 1968년, 그게 여름이었을까, 가을이었을까. KBS레코드실에 근무하던 정은영씨가, 미국에서 젊은 가수가 귀국하는데 한번 만나봐 달라고 했다. 한대수, 동안에 장발이고, 약간 탁성에 경상도 사투리가 다정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니까 '프로 포토아티스트'라고 대답했다. 리사이틀을 하겠다고 해서 드라마센터에서 판을 벌였다. 조영남, 트윈폴리오가 우정출연으로 기어들었다. 한대수는 기타도 치고,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도 하고, 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스스럼없었다. 겁을 모르는 남자. 그는 무게 있게 리사이틀 현장을 떠받쳤다. 나는 그날 무대에서 달콤한 사랑이나 이별 노래를 들은 기억이 없다.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그에게서 도사의 모습을 봤다면 과장이 될는지. 하지만 그는 그날 영락없는 도사였고, 거인이었고, 귀여운 폭군이었으며, 분명 우리 젊은이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명령'했고, 우리가 바라는 감각을 되찾고자 했으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젊음을 대변해서 행복의 나라를 지시했다. 그로 인해 '싱어송라이터'란 말이 우리 곁에 뿌리를 내렸다. 리사이틀이 있고 며칠 뒤, 내가 제작 연출했던 동양 TV 쇼 프로그램에 그를 등장시켰다. 평이 좋아 다시 한 번 출연시키려는데 상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다 좋은데 머리가 너무 기니 자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전하니까, 한대수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딴 사람은 몰라도 어떻게 이백천 씨까지 그런 말을 하십니까.\" 14세 연하의 소년 가수에게서 듣는, 서슬 푸른 하늘의 질책이었다. 그는 중머리로 나와 노래했고, 다시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 3. 불의 열정으로 삶-사랑-음악을 살아내는 바람 같은 나그네 로 사랑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노래하고, 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을 향해 여행하게 한 한대수가 한국을 떠난 것은 1977년의 일이다. 그는 노래를 계속 하기 위해 나그네가 되기를 선택했다. 바람에 실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안주할 땅을 갖지 못한 정신적 유배자로서 자유롭고 고독한 나그네의 혼이 뿜어내는 아름답고 끊이지 않는 노래를 계속 불러왔다. 그런 한대수는 가슴 아픈 성장기를 거친 한국 소년이었고 '빳다'를 치는 한국 군대에 다녀 온 유일한 뉴요커였다. 그는 남자가 생겨 자기를 떠난 전처의 '그 남자'가 곤경에 처하자 그를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나중에 '그 남자'와도 헤어지고 신경쇠약에 걸린 전처를 새 아내와 사는 아파트에 데려와 보살피는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었다. '불의 열정으로 인생을 살아 온 야수'인 만큼 '너무도 인간적인 히피', 그가 바로 한국 포크 록의 위대한 개척자 한대수이다. 4. \"무지가 축복이 될 수 있다\" 데뷔 앨범부터 전작까지 항상 당대 가장 도전적인 음반들을 발표한 진정한 뮤지션의 표본이자 살아 있는 신화, 한대수...... \"그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존 레논과 같은 인지도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었다\"라고 웹진 '가슴'의 편집장인 박준흠 씨는 말한다. 그런 한대수는 단 한 번도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당당하다. \"나는 정식 음악교육은 받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엉터리다. 하지만 비틀즈, 롤링 스톤즈, 후, 도어스와 같은 위대한 록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플리트우드 맥의 건반 주자를 제외하고는. 내가 알기로 대 록스타 가운데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런던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한 엘튼 존뿐이다. 이것이 로큰롤의 장점이다. 부지가 축복이 될 수 있다. 'The Wall'이나 'Sgt. PEpper'같은 이단적인 걸작을 낳은 것은 바로 이 무지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곡을 쓰는지 모른다.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음악이 내게 찾아온다. 그 충동은 내 안의 주체할 수 없는 격렬함에서 끊임없이 솟아난다.\"

저자 소개

  • 저자 : 한대수
한대수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아버지가 실종되어 조부모 슬하에서 외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조부모를 따라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랐고 경남중ㆍ고등학교에서 수학했다. 17세 때,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10대 시절 가정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가 상담 교사의 도움으로 예술적 재능을 발견하여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고 뉴욕 사진학교로 옮겨 대학을 마쳤다.

1960년대 후반 록 음악 혁명과 반문화운동의 열기 속에서 예술적 자양분을 섭취했으며, 사진학교 졸업 후 귀국하여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러다 박정희 정권의 대중문화 탄압과 생활고로 음악활동을 중단했다. 1970년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에 입선했고, 한국 디자인포장센터에 취직하여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1971년 해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했고, 제대 후 첫 앨범 '멀고 먼 길'을 냈다. 이듬해 2집 '고무신'을 냈으나 '체제전복적 음악'으로 낙인찍혀 모두 금지곡이 되고 마스터테이프까지 압수당했다.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사진가로 일하며 시를 쓰고 사진을 찍고 작곡을 했다.

14년 만에 3집 '무한대'를 낸 이후 '기억상실', '천사들의 담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등 계속 앨범을 발표했다. 1997년에는 '크로스비트 아시아' 후원 후쿠오카 콘서트에서 일본 록의 여왕 카르멘 마키와 공연했고, 1999년 공연 실황을 담은 '1975 고무신 ~ 1997 후쿠오카'를 냈다. 2000년에는 기존 앨범을 새롭게 담은 앨범 '기억상실/천사들의 담화'와 '마스터피스'를 냈다.

목차

목차
그 꿈같은 방 가운데 놓여 있던 행복
도사였고 거인이었고 귀여운 폭군이었던 남자
머리말
1부 불행한 출발
대저택의 외로운 소년
17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
처음 노래를 쓰다
도중하차한 수의사의 길
평화와 사랑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2부 겨울공화국의 히피
1968년 봄, 서울
조국에서 노래할 수 있다
'최초의 히피, 한국에 등장하다'
드라마센터 콘서트
독재 치하의 아방가르드들
명신
지워버리고 싶은 군대시절
오랜 진통 끝에 나온 첫 앨범
3부 두 사람의 아내
뉴욕의 결혼 생활
삼총사
그녀가 떠난 자리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
천사들의 담화
몽고의 공주
모스크바 땅을 밟다
돌아온 명신
4부 뒤늦은 스포트라이트
뜻밖의 후원자
일본 공연에 한국 대표라니요?
'당신은 훌륭한 예술가니까 잘 해낼거예요.'
일본 공연, 진짜 일본 사람들
30년만의 귀환
중국의 로커 최건을 만나다
5부 나는 세상을 노래한다
내가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HOT옆에서 하드록을 해도 좋아
문화적 혼혈아의 한국사랑
아시아의 스위스를 꿈꾸며
내가 본 미국
공짜주의
에필로그
연보
경계를 넘는 음악시인 한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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