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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8988430441 / 350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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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오늘날 생필품인 듯 누구나 사용하는 화장품, 그러나 화장품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고 신분이 아주 높거나 낮은 여성들만 화장하던 시대도 있었다. 바로 그 시대에 남녀노소 누구나 화장하는 아름다운 세상, 즉 민주화된 미의 세계를 이룩한 여성이 있다. 헬레나 루빈스타인, 엘리자베스 아덴, 에스티 로더!
태어난 순서대로 화장품의 세계를 제패하고 동화 같은 부와 명예를 얻으며 차례로 여왕자리에 오른 화장품의 트로이카 세 여성의 얽히고 설킨 삶은 아름다운 성공을 꿈꾸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희망, 원칙, 비즈니스 포인트를 짚어줄 것이다.
출판사 리뷰
꿈과 시대정신이 기업으로 거듭나고, 세계적인 제국으로 성장하다 20세기 이후, 뷰티산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었다. 유사 이래 아름다움은 늘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화두였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점차 늘어나고, 아름다운 몸이 여성의 삶을 부와 권력에 가깝게 끌어주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후 아름다움의 산업은 오로지 성장이라는 외길만 달려왔다. 오로지 이것뿐일까? 오늘날 생필품인 듯 누구나 사용하고, 소위 명품이라는 고급 브랜드가 많은 여성의 소망이자, 사회경제적 신분을 나타내는 대표 아이콘이 된 화장품. 이렇듯 화장품과 뷰티산업이 인간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기까지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뛰어난 인물이 있지 않았을까? 헬레나 루빈스타인(1870~1965), 엘리자베스 아덴(1878~1966), 에스티 로더(1907~2004)! 이 여성들이 바로 그 인물들이다. 1950년대까지 진정한 남자 경쟁자는 ‘레블론’의 창업자 찰스 렙슨밖에 없었는데, 그는 어느 순간도 이 3명의 여성만큼 의미를 갖지 못했다. 소박하게 출발했지만 굳건했던 그녀들의 꿈과 서로 자존심을 건 냉정한 라이벌의식은 결국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마침내 전세계를 석권하는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열정, 능력, 용기, 인내, 실행력, 결단력, 상상력, 시대 읽기, 자신에 대한 믿음 등은 목표달성에 꼭 필요한 덕목들이다. 이들은 이 미덕을 두루 지닌 대표적인 여성들로, 태어난 차례로 ‘아름다움의 제국’ 여왕자리에 등극하였다. 또 그녀들은 각기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지닌 매력적인 여성들이었다. 루빈스타인, 아덴, 로더의 부상과 함께 사회적인 변화, 여성운동 또한 병행되었다. 따라서 뷰티산업의 역사, 즉 여성의 성공사는 여성운동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화장은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사회적 신분이 아주 높거나 낮은 여자들만 화장했다. 그후에도 뷰티살롱, 몸가꾸기 등은 부유한 여성, 직장여성, 취직을 원하는 여성에게나 해당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개척자들이 널리 확산시킨 ‘아름다움의 민주화’는 타율적인 여성상을 점차 자율적인 여성상으로 변화시키는데 한몫했다. 이제 아름다움, 건강, 피부관리, 날씬함 같은 개념에 남자들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들은 체계적인 전문지식과 자본이 없거나 부족한 상태(창업자금으로 소자본을 빌리거나, 미용실 한켠에 조그만 특판대를 설치하며 시작)에서 꿈과 열정,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로 거대한 제국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꽃다운 20대의 나이에 용감하게 시작했으니, 그 나이의 여성이 거느릴 수 있는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가내수공업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 화장품과 뷰티업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책은 헬레나, 엘리자베스, 에스티 등 세 ‘아름다움의 여왕’ 삶뿐 아니라, 10년 단위로 아름다움에 관한 당시의 유행, 미의식, 사회상을 정리하고 있어, 간략한 ‘아름다움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다. 헬레나 루빈스타인 - 수많은 ‘세계 최초’, 화장품 역사의 첫장을 열다! 1870년 폴란드 크라카우에서 부유한 유대인의 딸부잣집 맏딸로 태어난 헬레나는 혼기가 차자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린다. 진보적인 아버지는 헬레나를 의대에 보내고자 했으나, 비위가 약한 딸은 끝내 의학공부를 포기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이많은 남자를 딸의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헬레나가 그를 거부하고 대신 사귀기 시작한 의학도를 부모님이 탐탁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안의 불화가 그치지 않자, 어머니는 호주에 사는 남동생에게 큰딸을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이것이 헬레나의 삶에 가열찬 불씨를 댕기는 시작이었다. 그녀는 멜버른에서 헝가리 화학자이자 어머니 친척인 리쿠스키 박사가 개발한 크림을 가지고 빌린 사업자금으로 뷰티살롱을 열어 자립을 시도하는데, 이후 두번 다시 빚을 지지 않았다. 헬레나는 너무 바쁜 나머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에게 화장품에 상표를 붙이고, 포장하고, 간단한 서류를 만들고, 우편물을 부치는 일을 시켰다. 그들은 이상한 ‘데이트’를 한 다음, 두번 다시 헬레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는 미국인 기자(후에 출판인) 에드워드 티투스로, 견문이 넓고 박식하며 진취적인 성격에 분위기 있는 멋쟁이였다. 그는 헬레나에게 연극과 음악의 세계를 소개하고, 헬레나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며 청혼하였다(헬레나 37세에 결혼). 이후 헬레나는 티투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자회견, 광고, 우편판매를 실시하고, 할리우드 스타나 귀부인, 왕족들을 대상으로 고급화 전략을 펼친다. ‘그 여자’ 엘리자베스 아덴에게 자신이 개척한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연구개발에 열중, 방수 마스카라, 토탈 미용프로그램, 색조화장품, 비타민크림, 남성화장품 등 무수히 많은 화장품을 세계 최초로 출시하였다. 동시에 중동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세계 대도시에 그녀 이름으로 뷰티살롱을 열며, 아름다움의 제국을 건설한 초대 여왕이 된다. 또한 1908년 런던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뽑히는 등, 예술적 감각으로 런던, 파리, 뉴욕의 예술계와 사교계를 매료시키며, 예술품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어 볼 만한 컬렉션을 남겼다.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 무수히 많은 초상화를 그린 인물로도 기록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아덴 - 1947년, 미국에서 인지도 2위 기업에 오르다! 1878년 캐나다 토론토 근교 우드브리지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아덴은 말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유복한 집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덴이 6세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것이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거부감을 심어주게 된다. 결혼으로 어머니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덴은 오빠가 있는 뉴욕으로 진출, 간호사, 경리, 마사지사 등으로 일하며, 뷰티산업에 눈뜨게 된다. 20대에 크림 제조법과 마사지법을 배우고, 오빠에게 빌린 자금으로 자신의 살롱 ‘레드 도어’를 열고, 거기에 삶의 전부를 걸고자 결심한다. 아름답고 날씬한 외모임에도 오직 일에 열중하느라, 36세가 되도록 남자 한번 사귀어보지 않았을 정도로. 완벽한 피부와 아름답고 날씬한 외모, ‘자석 손’이라고 소문난 ‘싹싹한 캐나다 아가씨’ 엘리자베스 아덴의 살롱에는 늘 손님이 넘쳤다. 휴일에도 일했으며, 심지어 36세에 은행원 토머스 젠킨스 루이스와 결혼한 당일에도 일할 정도로 그녀는 일을 즐겼다. 1915년 1차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의 품위있는 실력자 헬레나 루빈스타인에게 대응하여, 엘리자베스는 ‘세계에서 제일 크고, 세련되고 우아한 미용살롱’이라는 광고로 응수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죽는 날까지 전세계를 시장으로 50년 이상 서로 라이벌이 되었다. 자존심을 건 경쟁으로 항상 서로를 긴장시키며, 언제나 최고인 1위를 목표로 삼았다. 그 덕분에 ‘혁신’ ‘세계 최초’를 서로 연속적으로 기록하며, 뷰티산업은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아덴이 화장품 제조업에서 1920년 이전에 세계 1위에 올라서고, 루빈스타인은 뷰티살롱에 심혈을 쏟았다. 또 아덴은 화장품 용기를 특이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주로 선물용으로 판매하였고, 루빈스타인은 제품의 품질에 승부를 걸어 구매자가 직접 쓸 용도의 화장품을 주로 생산하였다. 1933년 아덴은 우아한 미용클럽과 건강온천(스파)를 결합한 여성전용 뷰티 팜 ‘메인 찬스’를 세계 최초로 열고, 최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며 빅히트를 기록한다. 철저하게 상류층을 겨냥한 아이디어로, 여배우 에바 가드너를 비롯한 할리우드 스타, 아이젠하워 대통령 영부인 메이미, 외교관 부인, 예술가, 부유층 부인들이 단골이 되었다. 아버지의 영향인 듯, 1931년 처음으로 말을 사들인 엘리자베스는 승마장 소유주로서도 최선을 다해, 주요 경마대회에서 우승하는 말을 여럿 키워냈다. 일부러 자녀를 갖지 않았던 그녀는 말들을 ‘우리 아가’라고 부르며 정성을 다했다. 그녀가 자신의 크림으로 시도한 경주마 다리 마사지는 처음 그녀의 유난이라고 비웃음을 당했지만, 현재 경주마 관리의 기본법이 되고 있다. 이로써 그녀는 비로소 상류층에 진입, 미국 동부의 유서 깊은 명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한때 패션산업에도 진출했던 그녀는 변덕과 까다로움이 심했지만, 회사의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철저한 CEO였다. 또 일주일 후에 해고하는 한이 있더라도, 언제나 최고 재능을 지닌 최고의 인재만을 고집했다. 1946년 「타임」은 커버스토리로 그녀를 표지사진과 함께 다루었고, 미국시민은 1947년 인지도 2위 기업으로 엘리자베스 아덴을 선정하였다. 이때가 그녀의 전성기였다. 2대 여왕이 된 그녀의 나이는 70세. 에스티 로더 - 1998년「타임」, ‘20세기 천재 경영인 20명’에 선정! 아름다움의 제국 3대 여왕, 에스티 로더는 1908년 뉴욕 외곽 퀸즈에서 영어가 서툰 헝가리계 이민자를 부모로 태어났다.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향기를 최초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미국의 코’ 에스티 로더는 일생동안 아름다운 향기와 옷, 고운 촉감에 애착을 나타냈다. 그녀는 1차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피부전문가인 외삼촌 존 쇼츠가 개발할 크림, 로션, 파우더, 글로우 등을 자신이 모델로 사진찍은 뉴욕의 한 미용실 손님들에게 주인 몰래 재빨리 발라주며, 잠재고객들의 호기심을 당겼다. 그후 주인의 제안으로 확장한 미용실 한켠에 특판매대를 설치하게 된다. 월세만 내면 모든 수입이 그녀 것이 되는 이 기회를 가난한 그녀가 놓칠 리 있겠는가. 그녀는 팔고 남은 화장품을 작고 예쁘게 포장해 미용실의 손님들에게 나눠주었다. 요즘 표현으로 샘플을 돌린 것인데, 이것은 세계 최초 샘플 전략으로, 당시로서 획기적인 마케팅이었다. 결국 ‘마케팅의 여왕’이란 칭호까지 받게 된 그녀는 서서히 화장품업계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그녀는 헬레나와 아덴이 이미 도달한 최고의 경지에 올라야 했고, 동시에 동세대 경쟁자 ‘레블론’의 찰스 렙슨과 혈투를 벌어야 했다. 그녀는 선배들이 걸어온 뷰티살롱과 화장품 제조라는 경영방식을 버리고, 오직 화장품 제조에만 심혈을 쏟았다. 방법은 고급 브랜드 전략. 이 또한 아주 뛰어난 마케팅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문제는 그녀에게 제품을 알릴 광고비가 없다는 점이었다. 에스티는 소문과 여론을 선도하는 지도급 인사들에게 화장품 세트를 무료로 선물하며 인지도를 쌓고, 그들이 고급 백화점에서 ‘에스티 로더’를 찾도록 유도했다. 할리우드 스타 출신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영국국왕이 왕관을 버리도록 만든 세기적 사랑의 주인공 심슨 부인 등도 이런 방식으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파리의 고급 백화점 라파예트에서 입점을 거부당하자, 그녀는 실수인 척 일부러 향수 ‘유쓰 듀’를 쏟아버렸다. 그러자 이 매력적인 향기가 무슨 향수냐며 고객들이 몰려들었고, 라파예트는 꼼짝 없이 입점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마케팅 여왕다운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이는 발상이다. ‘자신의 제품에 대한 최상의 광고’라는 그녀는 언제나 사업과 일상에서 여성성이 넘쳤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1960년대에 이르러 선배들을 제치고 제3대 여왕에 등극하여, 지금(현재 손자 윌리엄이 회장이다)까지 여왕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8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의 천재 경영인 20명’에 그녀를 선정했다.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가족기업으로 장남에게 2대 회장자리를 넘겨준 에스티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2004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던 날, 처음으로 여왕의 나이가 알려졌다. 향년 97세였다.
프롤로그
1장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름다움을 향하여 세찬 파도가 밀려오다.
2장 1910년~1920년
향수가 사랑의 욕구를 자극하다
3장 1920년~1930년
쇼트커트를 하고, 짧은 스커트를 입다
4장 1930년~1940년
메이크업이 대중화되다
5장 1940년~1950년
여성의사회활동이 보편화되다
6장 1950년~1960년
모든 여성을 아름답게!
7장 1960년~1970년
미니스커트와 화려한 색에 도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