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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502810 /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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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마 아오, 장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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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밀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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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서
- 11,700
- 15,120
- 15,750
- 19,800
- [시리즈] 산하 저학년 인물이야기 [17]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애국가 1906 년 평양에서 나고 자란 안익태는 어린 시절, 선물 받은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며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양 숭실 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삼일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 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합니다. 그 일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끼던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음악 아카테미를 거치며 작곡과 지휘를 배워 나갑니다. 하지만... ▶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애국가 1906 년 평양에서 나고 자란 안익태는 어린 시절, 선물 받은 바이올린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며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양 숭실 중학교에 다니던 그는 삼일운동 관련 수감자 구출 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합니다. 그 일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끼던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일본으로 떠납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음악 아카테미를 거치며 작곡과 지휘를 배워 나갑니다. 하지만 내 나라가 아닌 낯선 남의 나라를 떠돌며 공부하던 안익태는 줄곧 한국의 처지를 걱정하고 그리워합니다. 미국에 있던 1935년에는 '한국의 생활'이라는 모음곡을 출판하고, 애국가 합창 부분이 없는 채로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완성합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안익태는 1936년 베를린에서 잠결에 떠오른 선율을 바탕으로 애국가를 완성해 '한국환상곡'에 합창 부분으로 넣습니다. 그리고 애국가의 악보를 정리해 미국의 대한국민회 앞으로 보내 해외 동포 사이에 널리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민족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되었고, 지금도 공식 국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 ▶ 애국가를 작곡한 세계적인 지휘자, 안익태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했다는 것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들을 지휘한 훌륭한 지휘자로서도 그 이름이 높습니다.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졸탄 코다이 등에게 사사 받은 안익태는 런던 로열 필하모니, 로마 심포니, 베를린 필하모니, 부다페스트 필하모니, 일본의 NHK 오케스트라 등 일류 교향악단들을 두루 지휘했습니다. 그가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는 모습은 독일 정부에서 영화로 촬영하여 전세계에 홍보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1946 년 마흔의 나이로 로리타 탈라벨라와 결혼하고서야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 정착하게 됩니다. 마요르카에서 교향악단을 만들고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다, 1965년 바르셀로나 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끝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줄곧 조국을 그리워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았던 안익태는 작품으로 '한국환상곡', '강천성악', '강산의 의기논개', '애국선열추도곡' 등을 남겼습니다. - ▶ 한국 음악의 선구자, 안익태 우리가 애국가를 공식 국가로 부르는 한 영원히 잊지 못할 작곡가 안익태. 그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세계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 강점의 불운한 시절에 세계적인 대가들에게 작곡과 지휘를 배워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 무대에 선 한국 음악의 선구자였습니다. 책에 소개된 안익태의 외손자 미구엘 안익태 씨의 말은 음악가 안익태가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음악에 몰두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합니다. 이 책은 열렬한 애국가이자 뛰어난 음악가였던 안익태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통해, 자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 할아버지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 시절에 조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나라에서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공부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음악을 공부하여,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자이자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스페인에서 제 할머니를 만나 결혼하고 살게 되었지만, 단 하루도 조국인 대한민국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집에는 언제나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가족과 함께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미구엘 안익태가 쓴 '나의 할아버지, 안익태 선생님' 중에서 - - - ▶ '한국환상곡'에 대하여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은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완성된 교향곡입니다. 한국의 민족 음악을 토대로 서정적인 느낌이 나게 하는 1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떠올리게 하고, 2부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에 신음하는 암울한 모습을 묘사해 무겁고 침통한 선율로 이어집니다. 3부에서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는 애국가 합창 부분으로 진행되고, 4부에서는 6·25 전쟁의 처절함을 전통 아악의 정취로 묘사하다가,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 나의 사랑아'의 만세소리와 함께 끝을 맺습니다.
목차
나의 할아버지, 안익태 선생님
]음악으로 민족의 혼을 되살리다
풍금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조국의 흙 한 줌에 담긴 사랑
일본 음악 학교에서
더 넓은 세계로
화려한 데뷔
'한국환상곡'은 작곡했지만
아아, '한국환상곡' 초연
슈트라우스의 제자가 되다
베를린 필하모니 고나현악단 지휘
전쟁도 꺾지 못한 지휘봉
고국에서의 연주들
음악으로 일본을 정복하다
안익태 연보
애국가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