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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황도개경

한국역사연구회 저 | 창작과비평사 | 200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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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482213 / 290쪽 225 x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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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통일신라 말기, 전국이 분열된 상황에서 새로운 통일제국의 패자가 등장하려던 무렵 역사의 전면에 나선 이래 개경은 황제의 나라를 지향한 고려의 수도로서 위상을 드높였다. 벽란도를 통해 '코리아'란 이름을 세계에 알린 개방적인 국제 상업도시,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잡은 수도, 화려하고 격조 높은 불교도시 개경. 이 책은 개경의 풍수, 성곽, 궁궐과 관청, 태묘와 사직, 사원 등을 통해 수도로서 개경의 구조를 살피고 도로, 시장과 주거, 교육, 축제 등을 다루어 고려 사람들의 생활중심지로서 개경의 전모를 되살려낸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 '황제의 나라'를 자칭한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60여km,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한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 개성. 고려시대의 정식명칭으로는 '개경'인 이곳은 경성·송도·송경·송?악 등의 여러 이름과 더불어, '황제의 나라' '천자의 나라'를 자칭한 고려사람들의 자부심의 상징으로 황도·황성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개경은 통일신라 멸망 이후 새롭게 부상한 통일제국의 패자 왕건이 919년 이곳을 수도로 정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이래 오백년 고려사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한편으로는 건국기의 대내외적 혼란을... ● '황제의 나라'를 자칭한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 서울에서 서북쪽으로 60여km,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한 고려의 오백년 도읍지 개성. 고려시대의 정식명칭으로는 '개경'인 이곳은 경성·송도·송경·송악 등의 여러 이름과 더불어, '황제의 나라' '천자의 나라'를 자칭한 고려사람들의 자부심의 상징으로 황도·황성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개경은 통일신라 멸망 이후 새롭게 부상한 통일제국의 패자 왕건이 919년 이곳을 수도로 정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이래 오백년 고려사와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한편으로는 건국기의 대내외적 혼란을 방비하고자 또 한편으로는 중국의 발달한 문물제도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 개경의 도시계획과 정비는 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고하고 생활하던 건국기 고려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의 참화를 가장 크게 입고 가장 많은 이산가족을 낳은 도시, 6·15선언 이후 남북 경제협력의 시금석으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이 도시의 전모를 그 전성기로부터 살펴본 것이다. ●유교적 체제, 불교적 문화가 어우러진 중세도시 \"그 나라를 무마하기 위해 그 지경에 들어서면 성곽들이 우뚝우뚝하여 실로 쉽사리 업신여길 수 없다\"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감탄은 건국기 고려의 세계관을 반증한다. 자연지세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풍수지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도읍을 정하고 고려 왕실의 정궁을 창건한 것(회경전의 축대가 위압적일 만큼 높은 이유이다), 중국의 제도를 수용하면서도 나라와 왕실이 중국의 그것과 대등하고 스스로 '천자국'에 살고 있다는 신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묘실(墓室)을 경영한 것, 천자를 정점으로 한 신분질서체계의 구현인 왕기제(王畿制)를 기본으로 삼은 경기(京畿)의 정비와 운영 등은 모두 자부심 높던 고려사람들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자 개경의 도시적 특성을 반영하는 사실들이다. 개경은 정치이념으로서 중국의 유교 질서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불교국가로서의 위상을 명확히 가진 고려의 특성이 응축되어 탄생한 도시인 것이다. 개경은 무엇보다 고려 불교의 중심지로서 불교도시의 면모를 분명히 갖추고 있었다. 개경 주위에만 300여 곳의 절이 있었고, 왕실에서는 부모의 명복을 비는 원찰을 운영했으며 모든 개경사람들이 어우러져 즐기는 연 2회의 축제 역시 연등회와 팔관회, 불교적 축제였다. 개경사람들은 부모의 제사를 비롯한 온갖 의례를 절에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개경 시내와 교외 경승지 요소요소에는 절이 자리해서 개경사람들의 사색의 공간이자 휴식처 노릇을 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각종 불화와 금자·은자 사경(寫經), 경함(經函) 등의 제작과 불경 간행을 통한 눈부신 인쇄·출판문화의 발전은 이런 환경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개경사람들의 생활의 이모저모 그러나 이곳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땀내 나는 생활의 공간이었다. 고려시대 전시기 동안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살던 개경의 시장과 주택가, 개경에서 벌어진 축제와 행사들을 살펴보면 개경사람들의 생활과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시전과 여항소시라 불리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청자벼루와 당대 최고품질의 먹 등 문방구를 거래했고, 중국에서 수입한 최고급 비단이 활발하게 사고 팔렸으며, 여자들의 머리장식과 화장품 등의 패션상품도 주요한 거래품목의 하나였다. 시장과 관아 주변에는 권세가들의 주택가가 밀집해 있었다. 오죽하면 동네이름에 '정승동'이 있었을까. 학식과 권력을 두루 갖춘 이들은 당대의 귀족으로서 요즘으로 치면 광화문-종로통에 해당할 곳에 자리를 잡고 일상적으로 교유했던 것이다. 한편 이 거리는 외국상인을 비롯해 온갖 사람들이 드나드는 생활의 광장으로서 싸움질도 심심찮게 벌어졌고, 드물게는 무인집권기 최충헌·최충수 형제의 정권쟁탈의 격전지로 변하기도 했다. 개경과 근교에는 권력을 앞세워 이권을 챙기려는 무리 때문에 집을 강매당한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이 있었고, 수도 방비에 필요한 각종 성곽을 축조하느라 동원된 가난한 일반백성의 눈물도 배어 있으니, 사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부 '개경의 구조'는 풍수·성곽·궁궐과 관청·태묘와 사직·절·5부방리, 4교, 경기 등을 다루면서 드높은 자긍심을 바탕으로 대내외적 혼란상을 극복하려 한 고려의 황도 개경의 윤곽을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2부 '개경의 생활과 문화'에서는 개경의 교통로와 주거·시장과 시장사람들·조세와 구휼 제도·교육기관·연등회, 팔관회 등의 축제를 다루어 고려시대 가장 높은 지적·문화적 수준을 구가하며 고려 문화의 정점을 살았던 개경사람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치밀한 공동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역사대중화 작업에 힘써온 한국역사연구회 개경사 연구반의 5년여 노력이 맺은 알찬 결실이다.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고려 왕조의 수도 개경과 지방 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계십니다. 《고려 시기 재정 운영과 조세 제도》《고려 500년 서울 개경의 생활사(공저)》 《고려의 황도 개경(공저)》을 쓰셨습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5
1부 개경의 구조
개경의 풍수/김기덕...13
개경을 에워싼 성곽/신안식...27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 궁궐과 관청/장지연...44
국가의 상징, 태묘와 사직/장지연...64
개경의 절/강호선...83
5부방리·4교·경기/홍영의·정학수...114
2부 개경의 생활과 문화
모든 길은 개경으로/정요근...143
개경의 주거/서성호...163
개경의 시장/서성호...173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웠던 조세/박종진...191
허울뿐인 구휼제도의 실상/박종진...199
인재 양성과 관료 충원의 중심지/도현철...209
개경의 축제, 연등회와 팔관회/강호선...223
개경의 변천과 미래의 개성/장지연...244
개성 문화재 맛보기/부록...253
개경연표/정학수...272
참고문헌...279
찾아보기...282
주요 도판 출처...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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